차를 몰다보면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은 배달하시는 라이더분들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내가 겪은 라이더분들 상당수는 도로교통을 웬만하면 지키지 않으셨고, 갑작스럽게 차 사이에서 튀어나온다든지, 길이 아닌 인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든지 하며 항상 긴장하게 만들곤 했다. 그럴 때면 배달하시는 분을 낮잡아 부른 ‘딸배’라는 용어가 마음속에 생겨난다. ‘딸배’는 배달 라이더를 낮잡아 부르는 안 좋은 용어다.
‘어이구 저러니까 ‘딸배’ 불리지!’
교통법규를 수시로 어기며, 요리조리 차들 사이를 넘나드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로의 무법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집에 도착한 나는 쿠팡이츠에서 치킨을 주문했다.
그때부턴 누구보다 배달을 빨리해 주시길 바랐다. 30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왜 이리 늦는 거지’ 하며 생전 보지 못한 배달 기사에 대해 왜 이렇게 굼뜨지 하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나의 ‘배달’과 ‘딸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인간이란 이렇게 이기적인 존재인가 보다. 배달 라이더분이 교통법규도 지키면서 온다면 지금보다 더 늦게 올 텐데, 그러면 손님은 늦게 배달 온 기사를 탓하게 된다. 반면에 교통법규도 어기며 빠르게 간다면 교통법규도 안 지킨다며 욕하게 된다.
배달 라이더는 왜 더 빠르게, 교통법규를 어기며 배달하기를 강요받는 걸까?
배달 라이더의 돈을 벌기 위한 욕심도 당연히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아닐까 싶다. 소비자인 나는 대신 음식을 배달하도록 돈을 지불했기에 그들이 가지는 리스크는 타자화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위험이 있는지, 차에 치일 확률, 사람을 칠 확률,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에 쓰러질 확률 등 그 모든 확률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으로 외재화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음식을 빠르게 내 집 앞에 가져오는 것뿐이고, 한 배달 기사의 생명과 안전은 내 관심사 밖이다. 일종의 기계 부품처럼 생각하게 된다.
한 제빵 회사에서 근로자는 상시적으로 다친다. 언론에서는 그 회사를 많이 욕하는데, 사실 배달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라는 사람도 그렇게 떳떳하진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런 특정인이 지목되지 않을 뿐이지 배달 라이더가 그렇게 빠르고 위험한 환경에 처해진 건 모두의 관심이 안전보다는 배달이 얼마나 빠르게 되는지만 관심이기 때문이다. 그게 나쁘고 좋은 걸 떠나서 돈을 지불한 이상 우리는 그 서비스에 제공하는 사람들을 부품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교통법규를 어기는 배달 라이더를 마냥 나쁘게 폄하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건 위험하고 안 좋은 행동이지만, 저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나’ 같은 급한 소비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나는 그래서 저렇게 위험하게 배달을 하는 그분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 같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나는 다시 치킨 배달 주문을 누른다.
이번에는 좀 식어도 되니 안전하게만 오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