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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12. 2023

수능과 아버지

아버지의 작은 위로 한마디

갑자기 날이 추워졌는데 알고 보니 곧 수능이었다.

과거 나의 수능이 떠올랐다. 올 해처럼 수능한파와는 달리 내가 치르던 해의 수능은 따뜻했다.


그 당시만 해도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일생의 유일한 목적처럼 느껴졌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세상에서 맞닥뜨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시골에서 자랐던 터라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며 고생하시는 것을 보았고 어쩐지 내가 좋은 대학을 간다면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고단한 삶에 위안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정말 매 순간 긴장하며 수능을 준비했었다. 지금 수능을 치를 학생들도 그럴 테지만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하루하루 보냈다.


대망의 수능 당일 날, 오늘만 지나면 모든 것에서 해방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설레었다.

수능 당일 국어 지문을 받는 순간까지 수능을 다 끝내고의 내 마음은 어떨지를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지문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설렘이 지나쳤던 걸까? 첫 교시 국어 지문이 읽히지가 않았다. 분명 글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걸 알고, 이 정도는 금방 풀어나갔던 터라 조급함이 더해졌다.


그렇게 1교시를 마쳤고, 직감적으로 망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머지 교시도 앞 전에 망쳤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연거푸 집중하지 못하였다. 점심시간을 보내며 연이어 재수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마지막 교시를 마치자 온몸에 힘이 빠졌으며, 그렇게 달려온 3년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밖에는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 나 때문에 고생하셨을 3년이 너무나 죄송했다.


터덜터덜 교문을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다.

두 분은 내 표정을 보시고는 이미 시험을 많이 못 쳤다는 것을 짐작하셨던 것 같다. 단순히 내가 시험을 못 쳤다는 것보단, 그간 부모님이 내게 거신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은 그날 저녁 물회집에 나를 데려가 주셨다.


아버지는 물회를 기다리며 별 다른 말씀이 없으시다가 이윽고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아들, 그만하면 수고했어”

아버지는 화를 내거나 탓하지 않고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셨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이 마음속 가득했던 그날, 아버지의 그 말씀 한 마디가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좋은 대학을 가는 것보다 나라는 아들을 더 사랑하시고 위하고 계셨다. 어쩌면 이 당연한 사실을 난 잠시 잊고 살았었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지금도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언제나 힘들 때면 떠올려보곤 한다.

어떤 상황에도 결과보다 나라는 사람 자체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다. 그리고 당해 수능은 내 직감대로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름 만족스러운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당시 수능을 망치고 온 내게, 만약 아버지가 책망하셨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으신 채 위안을 주셨다. 만족스러운 대학을 갔다는 것보다 내게 이러한 소중한 가족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분들의 아들이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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