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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04. 2023

한 때 일했던 아이스크림가게

그때 참 그랬었던 것 같다

 가끔씩 날씨와 시간, 향기, 기분이 과거의 그 때와 비슷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 3~4초 정도는 그때의 모습의 한 장면에 들어가게 된다. 주머니는 한없이 가벼웠지만 순수한 마음과 희망만은 가득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낯선 서울에 올라와서 시작한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촌티 나는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홍대에서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점원의 옷을 입고서 한 겨울 추운 줄도 모르고 쓰레기 봉투를 묶어서 밖으로 내놓으러 나왔다. 나와 또래일 사람들의 일탈을 보며 그 묘한 홍대에서 느껴지는 풍경이 낯설게 설레었다.


 당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엇이 없었다. 제대는 하였으나 어떤 직업을 가질지 막막했던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은 방학 동안 금융공기업 준비를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동안의 생활비를 걱정했어야 했던 나로서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방학 내내 맞지 않은 경제 공부를 하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처지가 비관스러워서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본인들이 원하는 목표를 빨리 찾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부러웠다.


 나 역시도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읽던 책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은 늘 결국 변호사나 판사가 되곤 했다 어렴풋이 나도 변호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지금도 조금만 더 노력하고 내 자신을 믿어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가 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둘러댔고, 무엇보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채워져있는 아르바이트 시간에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것은 과분하다고 어느 순간 믿어버렸다. 


 지금의 내 주위에는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 일을 하는 친구도 있고, 학문에 매진하여 현재는 해외에서 수학하는 친구도 있으며, 다들 안될 것 같다던 회계사가 되어 나름의 전문성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몇 살 먹지 않은 나이임에도 한 가지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본인이 하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면 대다수는 이룬다는 것이었다. 과거 변호사니 회계사니 수년의 시간을 보내야 될 수 있는 목표를 내 눈에서는 안 될 것들로 여겨졌다. 시간을 되돌려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나 그래도 내가 한마디를 과거의 나에게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나에게 사치라고 여겼던 나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할 수 있으니까 노력해봐"라고 말해주고 싶다.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가벼운 주머니가 아니라 무거운 현실에 눌려서 자신감을 잃은 채 꿈까지 잊어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꿈을 꾸어도 됐을 나름의 좋은 환경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연민과 약간의 게으름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더 만족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내가 싫다거나, 지금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볼 때에 현실에 치여 꿈을 꾸지 못했던 그 모습이 많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내가 나이가 든 건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비슷한 생각과 고민이 있을 사람들에게,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조금은 더 꿈을 꾸고 노력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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