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글, 교수님
대학에 오고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것은 아무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입학하기 전 공부할 환경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도서관에서는 온전히 공부에만 빠져들 수 있었다. 지어지지 얼마 않 된 도서관에는 신입생들의 발걸음이 아직 닿지 않은 공간들이 있었는 데, 그 자리에 갈 때마다 도서관 전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1학년 첫 학기에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만 앉아 있었다. 시골에서 처음 온 자격지심에 혹시나 뒤처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에 온 종일 공부만 하려고 했었다.(물론 학년이 지날 수록 나중에는 도서관에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때 내가 들었던 한 수업이 있었는 데, 그 수업이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수업이었다.
격 주로 읽어야 할 책이 있었는 데, 수업 시간마다 토론을 했고, 조별 발표와 퀴즈, 보고서까지 지금 생각해도 그 양이 꽤나 적지 않은 수업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이 주어진 책을 정말 꼼꼼히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 읽었던 책이 플라톤의 "국가론"이 었는 데, 분명 한국어인데 10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방법은 국가론을 해설하는 다른 여러 책들을 읽는 것이었다. 특히나 어린이를 위한 해설용 국가론 책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는 유토피아(이건 좀 쉬웠다.), 신국론 등과 같은 정말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을 읽어야만 했다. 그때는 이렇게 꾸역꾸역 읽어야하는 책들이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결국 무난무난한 성적을 받고 그 학기를 끝냈다. 그러나 그렇게 읽었던 책들은 내게 다른 취미를 안겨주었는데, 그것은 독서였다, 아무래도 험난했던 독서를 끝내고 나니, 그 후로 읽었던 다른 책들은 보다 이해하기도 쉽고 편했으며, 재미까지 느껴졌다.
아마 그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려 한 것 같다.
아무튼, 2학기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온전히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장학금으로 받은 돈은 1학기 때 모두 써버렸기에, 학교 앞 편의점에가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도 서툰데다가, 시간 관리도 영 잘하지 못했던 철없던 20살이었기에 성적은 수직하락을 했다. 그리고 다다른 곳은 '군대'였다.
"속세를 빨리 떠나야겠어."
지금 빨리 군대를 가지 않으면 학점의 자유낙하(Free Fall)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군대는 정말 험난했다. 고참들이 서있던 자리에는 공기까지 무거워서 정말 거짓말 하지 않고, 숨도 잘 쉬지 못할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당시 일병들은 도서관에 가지 못하게 했기에 상병이 되면 꼭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상병이 되어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기 시작했다.
군대 도서관이라서 약간은 보수적인 책이 많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구비했다. 책의 양이나 질이 아주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곳에서도 보석 같은 책들이 서장 속에서 항상 숨어있었다. 군 생활동안 300백권의 책을 읽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했지만, 나는 워낙 느리게 읽는 독서 초보자(?)였기에 1권을 읽는데에 한 5일 내지 1주일이 소요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책은 정말 꾸준히 읽었다.
병장이 되어 제대를 한 2-3달 남겼던 때에, 내가 읽은 책들도 거짓말을 좀 보태서 100권 정도되었다.(공군이라서 군 생활이 길었던 것도 한 몫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부대 독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나 말고도 한 열 분은 받으셨는데, 사실 그 중에서는 내가 가장 적게 읽은 사람이긴 했다. 그래도 이 상은 20살 이후 받은 한 두개의 상 중에 하나였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무언가 예기치 않게 받은 상이라 더 좋았다.
그렇게 한 독서는 남은 대학 생활의 큰 자산이 되어주었다. 특히나 두각을 보인 것은 글쓰기였다. (필자는 본인이 지금도 글을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평소 같으면 글쓰기는 정말 고역이였을 것 같은데, 여러가지 책들을 접하고나니 가장 좋아했던 과제나 시험도 글쓰기가 되었다. 나의 생각과 경험, 여러 책들 속의 지식을 백지 속에 쏟아내어 채우가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수업도 독서와 관련된 수업을 보다 가까이 하고, 매일 일기를 조금씩 써가며 글쓰기를 실력을 알게 모르게 늘려갔던 것 같다.
한편, 현실적인 얘기를 조금 하자면, 제대 후의 생활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해야한다는 생각에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시작을 했고, 그에 따라 공부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주말에는 아이스크림 가계에서 일했고, 평일에는 학교 근로학생으로 일했다. 물론 핑계긴 하지만, 나중에는 친구들의 학업 능력을 따라가기 버거운 단계에 이르렀다. 그때는 자존감이 정말 많이 낮아졌다.
"공부만 할 수는 없는 걸까"
보통의 학생처럼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과 스스로의 모습이 많이 안타까웠기에 속상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이보다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고,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내 상황은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틈틈이 독서를 했다. 그때 책을 손에 놓지 않던 것은 습관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일종의 나만의 전략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잘 접하지 않으니까, 왠지 독서라도 열심히 한다면 이것도 내 나름대로의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공 점수를 잘 받지 못했고, 아는 사람이 많지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하더라도, 독서를 하는 것은 그런 것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행복에 관한 수업을 수강했다.
그때 정말 양질의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는 데, 과제가 매주 글을 쓰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 걱정이 많았고, 삶이 살짝은 버겁다고 느껴졌었다. 그래도 그 수업 시간에 내주는 글쓰기 만큼은 정말 누구보다 성실히 하고자 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 수업이었기에 열심히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드물었다. 수업 시간에 읽은 여러 책 중, 니부어의 "도덕적인간과 비도적사회",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는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무튼, 이 수업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고민과 삶의 방향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쓴 글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교수님은 수업을 마치고 나서 따로 한 말씀하셨다.
"자네, 나중에 어쩌면 글로 먹고 살 것 같은걸."
교수님의 그 말씀 한 마디가 살짝은 버거운 내 삶 속의 짐을 잠시나마 덜게 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성취한 것도 없던 내게 그러한 칭찬은 정말 단비같은 존재였다. 물론 교수님께서 워낙 자상한 분이셔서 이후에도 줄 곧 칭찬을 자주해주셨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빵이 더 가치가 있듯, 누군가의 관심과 내가 쓴 글의 행간의 의미를 이해해주셨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내게는 그러한 칭찬 한 마디가 내가 힘겨운 한 주, 한 달을 버텨나가는 기억이 되어 주곤 했다.
종종 독서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이는 사실 나와 남을 비교해서 그런 것인데, 시선을 본인에게 돌리면 생각이 달라졌다. 2년 뒤 100권의 책을 읽은 나하고 1권의 책을 읽은 나하고를 생각해보니 결론은 자명했다. 어쨌거나, 지금도 독서하는 습관은 내게 좋은 취미이자 삶을 살아가는 데에 좋은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비록 교수님의 말씀처럼 글로 수익을 내지는 않지만, 글쓰는 취미는 내게 삶의 소소한 행복을 준다. 자가격리 시즌에 어느 누가 이처럼 한 가지에 몰입하면서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독서를 틈틈히 하고, 때로는 이처럼 글을 가끔 쓰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6년이라는 대학 생활동안 내가 가지게 된 가장 큰 재산은 어쩌면 이 독서하는 습관이 아닐까 싶다. 빠른 삶을 살고 싶다면 전공 공부만 잘해도 충분하겠지만, 느리더라도 깊이 있는 삶을 소유하는 데에는 독서만큼 좋은 습관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조심스럽게 권유를 드리자면, 혹시라도, 시간적 여유가 되신다면 독서를 하루 20분이라도 해보는 걸 추천드린다. 삶의 깊이가 분명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