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리더라도 빌빌 기어서 간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얼마 전 우리 가게 옆 2층 노래방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만취해서 굴러 떨어진 부부를 봤다. 아내는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남편은 이마에 혹이 하나 생긴 채로 잘도 잤다. 한참을 흔들어 깨우니 남편은 일어났는데 아내는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도 찢어지고 코피가 제법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아무쪼록 노래방 사장님이 지혈을 하고 있으니 구급대원이 왔다. 세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도 상냥한 대원이 없었다. 심지어 선임으로 보이는 대원은 신경질적이었다. 그때 술에 만취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방공무원은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공무원인데 남편이 치근덕 거리니 정말이지 한 대 칠 것 같았다. 그날 하루의 고됨이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거라고 느꼈다. 알코올 중독자만 세상에 없어져도 그들의 업무 환경이 얼마나 개선될까? 다만 술에서 마진을 남기는 상인 모두는 문을 닫을 것이다.
어떤 업종에 몸을 담고 있든 프로가 되는 사람은 포커페이스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 고급 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분이 태도가 되는데 내 시간을 투자해서 소득을 얻는 근로 소득 중일 때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삶의 100%가 좋은 기분의 상태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나 고객에게 안 좋은 기분을 옮겨 버리는 것이다. 표정, 말투, 신경질, 공격성 등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불친절'이라고 한다. 갑과 을은 언제나 존재하는데 을일 때 불친절 했다가는 돌아오는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평소에 이성에게 먼저 관심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내가 은행원에게 첫눈에 반한 적이 있다. 아, 첫눈이 아니라 몇 번째 눈에서 말이다. 예로 들어 10명의 은행원 중 9명이 내가 느끼기에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유독 그 은행원 한 명이 친절했던 것이다. 귀가 어두운 어르신에게는 가까이 다가가 더 큰 목소리도 또박또박 설명하는 모습을 봤던 것이다. 개인의 능력치는 그 점에서 차이가 난다. 내부적인 상황은 모르지만 정직원이 아니라 계약직 사원인데 정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든지 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남자친구 있으신가요?" 이 한 마디를 못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일반인들을 상대할 때 내가 정의한 친절함이란 단순히 있는 힘껏 빌빌 기는 것이다. 내가 아랫사람이고 내가 부족하고 내가 죄송한 것이다. 이것을 몸에 익히는 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매우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데 3년이 걸린다고 했을 때 친절함을 익히는 데는 최소 5년이 걸린다. 불친절했던 식당에는 아무리 맛있어도 두 번은 안 간다. 실제로 맛집 사장님이 매우 불친절하다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가게는 사장이 친절했다. "아이고, 제가 죄송합니다.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손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 번의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정수리는 옛날이야기고 뒤통수가 보이게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수많은 고통과 아픔, 억울함 등의 경험으로 친절함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고급 기술을 체득하게 되면 거짓말처럼 매출이 오르게 된다. 가게에 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테이블에 착석하는 즉시 드실 수 있게 어떤 메뉴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자존심이 전부였던 내가 이런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돈도 백도 없다면 진심으로 빌빌 기는 방법뿐이다. 그렇게 기어서 높은 자리까지 올랐을 때 무너질 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식당 창업을 한 사람 중에 끝까지 남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물론 내 관점이지만, 빌빌 길 수 없기 때문일 거다. 당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고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일이 무언가 잘 풀리고 있어도 평온함이 감싸고 있어도 언제나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라. 그 정도의 간절함을 뼛속에 품을 수 있을 때쯤 친절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