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발등에 불똥을 떨어트려라.
갑자기 우울할 때가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큰 이유도 없고 가슴은 막혀버려서 깝깝해지는 것이다. 개인적인 통계지만 그때는 대부분 바빠죽겠다가 갑자기 안 바빠져서 그렇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보려고 해도 되레 바쁠 때보다 더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이때 내가 만든 해결책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발등에 불똥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살짝 짜증이 날 정도로 자신을 바쁘게 만들어버리면서 다시 바빠질 때까지 우울감을 감춰버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손님이 진짜 없는 날이 있다.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더 그렇다. 나 같은 경우는 sns에 올릴 글귀를 만들어본다든지 아니면 독자 이름으로 이름 시를 써준다. 진짜 어려운 이름은 한 시간 정도를 녹여내야 한다. 그동안 이름 시를 2,000명 정도 넘게 써줬던 것 같다. 또 그게 아니라면 사진을 찍으러 가까운 동네를 돌아다닌다. 사진과 카메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지금 내가 담고 싶은 장면을 한 장의 사진으로 연출하는 게 재밌을 때가 있다. 코로나로 인한 시간제한일 때는 매장에 손님이 없으니 배달 갔다가 글 썼다가 반복하며 저서 두 권을 집필해 버렸다.
정년퇴직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우울감을 많이 느끼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아마 내가 말한 이유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어머니도 그렇지만 이틀을 못 쉰다. 이틀부터는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만, 어머니와 나는 다르게 불편하다. 어머니는 무조건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쉬고는 싶지만 아주 깊은 곳까지 고독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사가 조용한 장마철을 틈 타 소설을 써볼까 생각도 했다. 장르는 범죄 스릴러인데 대충 가이드라인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그 정도의 내용 같으면 경찰서에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로 잡으러 오고도 남을 내용인데 참아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설경구 나오는 살인자의 기억법 보셨죠? 그게 원래 김영하라는 작가님이 쓴 소설인데요. 그 작가님 얼마나 착하게 생겼는지 검색해서 한 번 알아보세요."라며 넘어갔지만 머릿속에 가이드라인이 정리가 될 때쯤 써보기는 할 거다.
오래전 부산 송정 바닷가에서 나이 지긋한 관상학자가 해준 말을 아직도 믿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보자, 예체능인데 그중에서도 작가, 작가가 맞다면 에세이 쪽인데, 에세이 쪽이 맞다면 소설을 써야 대성할 관상이네요. 당신은 절대 로또는 없습니다."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의 말을 거의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당시 첫 번째 저서를 출간하고 이리 팔리지가 않냐며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너무 큰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 한마디로 후에 두 권에 저서가 더 출간됐다.
갑자기 이유 없이 우울감이 들 때는 이유를 찾는 순간부터 어쩌면 암흑 속에 홀로 잠겨 빠져나오게 되지 못할 수가 있다. 가볍고 간결하게 생각했을 때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면 단순히 덜 바빠서 무언가에 열정을 예전만큼 쏟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바빠질 때까지 아니라면 다시 바쁘게 돌려놓든지 쉽지 않다면 무언가 부가적인 것으로 발등에 자발적인 불똥을 떨어트려 스스로를 바쁘게 만들어라. 그 때문에 좋아하는 취미가 꼭 필요한 것이다. 하고 싶은 스포츠가 있다면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레슨을 받아도 좋고 남들 시선 생각하지 말고 진짜 재밌는 책을 들고 다니며 책 속에 빠져도 좋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을 하고 행동까지 이어졌을 때는 오답이 없다. 만약 오답이 있다면 생각만으로 그쳤을 때다. 그 오답 또한 남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신에게만 오답이 되는 것이다. 꺾여버린 국기의 깃대를 어떻게든 바로 세워 놓고 돌아서지 못한 내 행동이 내게는 오답이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바삐 생각하고 움직여야만 한다. 요즘에서야 우울감, 우울증 등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달리 말하자면 생각만 많은 게으름뱅이인 것이다. 그 때문이라면 생각이 많은 게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