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이 우선이다.
기분은 멘털과 분노를 다스린다.
장사를 해오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어머니였다. 실수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머니는 기분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하셨다. 그리되면 그 하나의 화살이 두 개가 되어 내게 날아오고 또 배가 돼서 어머니께 날아간다. 당연히 다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수가 발생하면 빨리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계속 짜증을 연발했다. 그 이유가 내 생각에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일 것이다. 기분이 나빠지면 내면에서 외면으로 반드시 새어 나오게 되어있다. 아무 상관없던 주변 사람도 같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즉, 기분이 멘털인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멘털이 나갈 이유가 없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는 그 결론을 가지고 어머니께 설명해 드렸다. "어머니 다섯 가지 순서만 생각합시다. 자, 발생 - 기분 전환 - 대처 - 해결 - 끝" 따라 해 보세요. 그때도 이미 어머니는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귀 닫기 모드에 돌입해 있었다. 그리되면 나는 들어줄 때까지 계속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1분 찬스를 썼고 "어머니 따라 해 보세요. 발생 - 기분 전환 - 대처 - 해결 - 끝"
"어머니, 우리 지금 돈 벌려고 장사하는 거 아니잖아요. 나름대로 좋은 추억을 만들고 행복을 위한 항해를 하려고 장사하는 거잖아요. 잘 들어보세요. 어머니로 인한 실수가 발생하든 사건이 발생하든 무엇이 발생하더라도 어머니는 가장 먼저 본인 기분을 다시 돌려놓으셔야 해요. 부정적인 상태를 긍정으로 돌려놓으셔야 긍정적인 대처가 이루어지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리되면 아주 잠깐 사이에 끝이 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안 좋은 기분을 이어간다면 대처 또한 엉망으로 이루어질뿐더러 그 짜증이 저한테도 느껴져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저도 기분이 나빠지게 돼요."
기분이 나빠졌을 때 한몇 만 원 정도를 쓰더라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자영업으로 비유하자면 '환불'정도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작은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나는 전액 환불과 새 음식을 해주는 대처를 해왔다. 계산은 안 해봤지만 억대는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보다 깔끔한 대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되레, 분노한 고객이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적자인데 그 돈 아까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주문을 외우며 장사를 이어왔고 우선 아직도 폐업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 철학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돈을 아까워하시고 그러한 대처에서 기분을 나빠하신다. 본인이 실수할 때마다 똑같은 대처를 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어머니께 말한다. "바로 잊어버리고 우리 기분만 생각하자고요. 어머니는 돈이 아까우세요? 저는 어머니의 기분이 아깝습니다. 어머니의 기분이 내 기분이 되니까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우리의 기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 말 틀렸습니까? 웃으면서 합시다. 웃으면서, 우리는 대처를 잘했고 잘 해결했습니다. 됐습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장사 왜 하나요?"
그렇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와 참 많이 다툰다.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쌩까는 성격이고 나는 쌓이는 성격이라서 결국에는 내가 손해다. 그 때문에 서로가 합의한 대로 규칙을 정해 놓는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규칙을 자꾸 깨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게 문제가 된다.
"어머니, 우리는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좋은 보트를 타거나 빨리 갈 수도 없죠. 목적지?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고무보트에 올라타 있어요. 당연히 패들 또한 하나씩 지고 있죠. 그 때문에 패들을 구호에 마음을 맞춰 같이 저어야만 나아갈 수 있어요. 어머니 혼자서 빨리 저어 버리거나 멈춰 버리면 제가 맞춰낼 수 없을뿐더러 저 혼자 백날 노력해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냥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것이 의미고 행복 아닌가요? 잃어버린 10년 그렇게 찾아봅시다. 제 마음 이해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어머니가 일반인 하고는 차원이 다른 클래스에 있을 만큼 일을 잘하시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다만, 종종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저질러 버리기 때문에 내가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기분이라는 것은 멘털과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지만 분노와도 관계가 있다. 안 좋은 기분을 참게 되면 결국에는 쌓이게 되고 그것이 분노로 이어지게 되면서 폭발하게 된다. 나는 분노를 화농성 여드름에 비유한다. 아무리 자신을 다스려도 곪아서 터지기 때문이다. 좁쌀 여드름처럼 그냥 놔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수류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억누르면 자신이 크게 다치고 잘못 터트리면 타인이 다칠 수 있다.
이처럼 분노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함정이지만 계속 쌓이고 있고 자신의 한계점을 알기에는 터져봐야 알 수 있다. 분노라는 것은 순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빵 하고 터질 것 같을 때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말 것과 아무도 없는 곳으로 즉시 자리를 옮길 것'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버리면 분명 타인에게 상처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설사를 지릴 것 같을 때 정말,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 조금씩 지리면서 화장실을 찾아간다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는 설령,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속옷과 바지에 모든 것을 배설할지언정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 가게에 손님이 있고 어머니는 귀를 닫고 있고 하소연할 곳도 없기에 참고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에 가게를 뛰쳐나가 버린다. 그리고는 일단은 나와 관련 없는 최대한 먼 곳으로 간다. 차를 타고 가든 오토바이를 타고 가든 조금 뛰어가든 생각보다 멀리 왔다고 싶을 때 조용한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래도 안 되면 두 잔을 마시고 그래도 안 되면 총 세 잔을 마신다. 그리고는 모르는 카페 사장님을 붙들고 한 마디 한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상하게 보이셨죠? 제가 분노를 해서 잠시 회피하러 왔습니다." 그때부터는 가득한 고름을 말끔히 짜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이때 카페 사장님이 말을 걸어주면 더 빨리 풀리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늦게 풀리지만 이 방법으로 분노가 가라앉게 된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갑자기 먹통으로 다운될 때라고 볼 수 있다. CPU에 열이 많이 발생했다든지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사양이 미달했다든지 아니면 먼지가 한가득 쌓였다든지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살펴보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다.
돌아갈 때는 컴퓨터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를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한계점을 만나지 못한다면 성장할 수가 없다.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이후로는 한계점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에 터지고 다음에는 1년에 한 번 터지고 그렇게 2년, 5년, 10년처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 때문이었다면 거리를 두고 잠시 떠났다가 돌아와도 되고 직장이라면 남은 동료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쉬었다가 돌아가는 것이 좋다. 대신, 확실하게 고름을 짜내고 가야 한다. 어중간하게 짜내면 조만간 또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이라는 게 내 기분이다. 마냥 좋을 수만 없고 또 나쁠 수만 없는 것이다. 내면에서 쌓이든 외부에서 쌓이든 결국 내면이 종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알아가고 통제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