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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Oct 05. 2024

글씨

제대 직전 휴가는 여름이었다. 복귀 당일, 불볕더위 속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서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통풍이 잘 안되는 초록빛 군복 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책에 관한 명언이 새겨져 있는 비석을 지나쳐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문 앞을 지키는 가드를 지나치면, 눈앞에 책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광장이 펼쳐졌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신간, 베스트셀러 등 각자 원하는 코너에서 책들의 표지를 훑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치며, 서점 구석에 마련된 필기류 매장으로 걸음했다. 군복 위 달린 약장을 흘긋 쳐다보던 직원은 여러 종류의 펜을 건넸고, 나는 그중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어느 회사의 스테디셀러 제품을 구매했다. 박스로 포장된 펜을 가방에 넣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 나는 제대 후 방에 놓인 책상에서 빈 종이 위에 잉크로 새겨 넣을 글자들을 상상했다.

어린 시절, 글자 바르게 쓰기 연습 같은 걸 종종 하곤 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아예 대회까지 열어서 아이들로 하여금 열심히 연습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곤 했다. 나름 상도 받았던 것 같은데, 약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불행히도 나의 글씨는 예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어른스럽게 쓰는 게 멋있는 줄만 알고 어릴 때부터 제멋대로 휘갈겨 쓰던 게 그대로 버릇이 되어버린 것이 원인이지 않나 싶다. 정성을 들여 한 자 한 자 쓰면 그래도 읽을 만은 한데, 문제는 그러다 보면 힘이 들어 몇 문장 쓰지도 못한 채 지쳐버린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글자 쓰기 실력에 비해 타자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커가면서 컴퓨터로 글을 쓰는 빈도가 잦아졌고, 어느새 글을 쓰는 데 키보드는 필수가 되어버렸다. 지금 이 글 역시 아이패드와 연결된 키보드 자판으로 빠르게 완성되고 있다.

20년 전에도 컴퓨터는 공공기관 및 회사 등에 널리 상용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지금보다는 생활에서 수기로 무언가를 작성해야 할 일이 많았겠지만.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보면, 펜과 종이로만 글을 쓸 수 있었던 시대가 있다. 컴퓨터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 펜으로 쓰는 글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악필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문제시되었을 것이다. 소통의 기본 수단인 글씨를 알아먹을 수 없게 쓰다니! 그 시기에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면 아마 아이들에게 글씨 쓰는 연습만 종일 시켜야 했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일했던 것들은 끊임없는 대체제를 맞이하며 그 위용을 잃어간다. 펜과 종이가 기본이었던 교실에는 노트북과 태블릿이 더 익숙해지게 되었고, 이제는 교과서도 디지털로 대체된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음악은 턴테이블과 LP판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CD와 카세트테이프가 출현하더니 이제는 음악 어플만 있으면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피커에서 고음질의 음악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나온다. 이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매장 앞에 놓인 키오스크는 카운터 점원을 대신해서 주문을 받는다. 쓸모의 영역에서 사람과 사물은 점점 밖으로 밀려난다.

그렇다면, 유용성을 잃어버린 존재들은 그렇게 밀려나 사라지게 되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필통 안에 형형색색의 펜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며, 직장인 역시 자기 펜을 구비한 채 출근길에 나선다. 종이책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LP와 CD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되려 시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주말 오전, 레코드샵에서 키스 자렛의 LP를 구매하는 동안 사장님은 다소 푸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하셨다. “어릴 때는 LP가 만 원만 해도 비싸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장 당 4만 원이 넘어가니 이거야 원..”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쓸모’나 ‘유용’의 가치로 재단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필요’를 응답받는다. 작년 여름, 제 몸만 한 군용 가방을 메고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며 사 온 펜은 그 뒤로 약 일 년 가까이 나의 방 한쪽에 놓여 있다. 하루 종일 쓰는 그 많은 글자들이 이 펜을 통해서 써지는 것은 아니지만, 늦은 밤 자기 전 하얀 종이 위에 세로선을 따라 적어내던 문장들은 이 펜이 없었다면 아마 내 안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뾰족한 펜촉이 종이에 흔적을 남기고, 그 위에 검은 잉크를 채워 넣는 동안 나는 누군가로부터 빌려온 문장과 불현듯 떠오른 문구들, 시와 짧은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놓곤 했다. 그 문장들은, 손에 쥔 펜처럼 무용할지라도 그 자리에 머무르며 여전히 숨을 내쉰다. 이 밤 역시 마찬가지다. 책상 옆에서 가만히 돌아가는 LP판과 흘러나오는 음악들, 독서대 위에 올려진 존 버거의 소설. 그 안에서 애틋한 마음을 나누는 아이다와 사비에르. 사람들. 쓸모의 세계 너머에는 여전히 지속되는 삶이 있다. 그리고, 삶에서 쓸모의 외벽에 자리한 그 모든 무용한 것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필요를 응답받는다. 재단된 가치 너머 서로의 존재 자체를 감각하는 무수한 몸짓들. 쓸모의 세계 바깥에는 무용한 존재들의 춤사위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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