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친구가 크게 다쳐 한동안 본가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동안 한 번 살아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그간 자취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서서히 독립을 생각할 나이인 만큼 이번 기회에 단기간 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감사한 제안에 응했다. 친구 집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사 준비를 미리 할 필요는 없었다. 짐도 많지 않은지라, 개학 후 이사 날짜에 가까워지면 준비를 하기로 하며 방학식 후 곧장 서울로 여행을 떠났다.
하루 같은 한 달이 끝나고, 서울과 파주, 광주를 오간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나는 여행자에서 다시 교사가 되어 있었다. 학교는 개학을 맞이했고,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나서며 문득 이사가 정말 코앞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계획한 전날, 머릿속으로 옮길 짐들을 셈한 후, 오전에 일찍 짐을 옮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간단히 운동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본격적으로 짐을 옮겼다. 옷가지와 책들, 턴테이블과 LP판, CD 등 잡다한 것들을 차곡차곡 차에 실었다. 10살쯤 되는 하얀 아반떼는 다행히 20대 청년이 이사할 짐들을 한 번에 옮길 만큼의 공간은 확보하고 있었다. 날은 무더웠고, 나는 오전에 씻은 게 무색하게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짐을 나르고 옮겼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짐을 모두 푼 뒤, 청소기로 한 번 전체 청소를 했다. 점심을 먹고 씻은 뒤, 턴테이블을 작동시키고 에어컨 아래 눕자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하얀 방 안을 둘러봤다. 이사는 약 4시간 만에 모두 끝이 났고, 나는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이 생활공간이 익숙한 듯 낯설었다. 묘한 기분과 함께 톰 미쉬의 노래가 흐릿해지며 나는 잠이 들었다.
이사의 사전적 정의는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김’이다. 발령받기 전까지 사는 곳은 늘 광주였지만, 이사의 정의를 ‘삶의 방식을 옮김’이라고 폭넓게 정의하면 여러 경험들이 떠오른다. 생각나는 첫 이사는 대학교 진학이다. 수능 점수를 받고 재수를 고민하던 도중, 위의 친구와 전화를 하다 자기는 교대를 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나는 거 없으면 너도 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초등학생 때부터 숱하게 적어 넣었던 장래희망 칸에 한 번도 자리하지 않았던 초등 교사는 친구의 말 한마디로 인해 30분 만에 결정되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경악했다. 졸업식 날, 교장이 연단에서 상장을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 “시험 다시 볼 거지?” 모두들 당연히 돌아올 거라 여겼고, 실은 나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아직까지 내 인생에 또 다른 입시는 없다.
다음 이사는 동아리였다. 대학 생활을 반 년 정도 하니 슬슬 권태로웠다. 수능을 다시 봐 볼까. 프린트한 모의고사를 도서관에서 풀어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맞이한 방학 직전, 대학교 춤 동아리에서 추가 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남자 2명이 필요한 동아리원들은, 당시 남학생들이 가장 많은(과 인원이 28명이었는데, 남자가 21명이었다. 교대 역사상 처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 과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평생 춤이란 걸 춰본 적 없던 나는, 친했던 과 동기가 자기도 들어가게 되었다며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에 문득 고민하기 시작했다. ‘재밌을 것 같은데’ 그날 곧바로 선배에게 연락을 하고, 당일 열렸던 개강 파티에 참석하며 동아리원으로 정식 가입이 완료되었다. 물론, 반수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3년 동아리를 하다 보니 임고생이 되었고, 간만에 하게 된 공부는 나름 재미있었다. 운 좋게 합격을 하게 되어 발령받은 곳은, 정말 운이 좋게도 나름 연고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여수였고 발령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나는 정장과 짐들을 안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광주를 떠나 살게 된 순간이었다. 고속도로를 타면서, 나는 창밖에서 흩어지는 풍경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문득 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약 2시간 동안의 주행 끝에 나는 여수 시민이 되었고, 교사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풋내기 사회인이 되었다.
잠에서 깬 뒤, 옅게 감도는 에어컨 냉기 속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이사라는 게 원래 이렇게 갑작스레 이루어지는 건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의 이사는 항상 별 고민 없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친구와 전화하며 교대에 원서를 접수했고, 즉흥적으로 동아리 선배에게 연락을 넣었다. 발령 희망지에 별 고민 없이 여수를 적어 넣었고, 이번 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개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면, 다들 놀라는 반응이 이어진다. 중요한 결정을 그렇게나 쉽게 하다니. 언젠가 문득, 만약 그런 결정들이 오랜 숙고 끝에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결말들을 떠올려봤지만, 다들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그간의 이사가 내게 남긴 것은, 어쨌든 삶은 이어진다는 만고의 진리였다.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고민과 결과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우연히 도착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의미는 사후적이었다.
그간의 삶의 습관 탓인지, 나는 미래의 목표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동료 교사들은 대개 승진을 고민한다.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고, 경제적 안정을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각자가 꿈꾸는 이사의 목적지가 뚜렷할수록, 현재의 주거지에 대한 고민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이삿짐이 원하는 곳으로만 흐를 수는 없으며, 우연히 도착한 목적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사할 곳을 찾기보다 이삿짐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사한 방은 이전과는 다르지만, 방안 곳곳에 자리한 나의 물건들은 이곳이 지금은 나의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어디로 떠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게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잠기운을 물리친 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스피커 전원을 켜고 턴테이블 위에 LP판을 올린다. 검정치마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평화로운 주말의 오후는 여느 주말과 다름없고, 바깥은 여전히 바다가 넘실댄다. 몸에 힘을 뺀 채 천천히 주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또 한 번의 이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