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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Oct 11. 2024

바밤바

퇴근 후 집 근처를 잠시 걸었다. 넓게 드리운 바다를 왼편에 두고 길게 뻗은 산책길을 걸으며, 초가을에 접어든 계절의 선선한 바람을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 적당한 피곤함을 느껴, 집 근처 마트에서 막대 바 아이스크림을 3개 샀다. 잠깐 고민한 끝에 오늘의 주인공은 아맛나와 바밤바, 그리고 쿠앤크. 고르고 보니, 오늘은 왠지 아재스러운 아이스크림들이다. 뭐, 그래도 맛있으니 됐지. 계산을 하고 현관까지 쭉 자리한 무시무시한 계단을 향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발을 내디뎠다.

적당히 땀이 흐르고 손에 든 아이스크림들을 휘적이며 걷던 도중, 머리 위로 고등학생이나 될 법한 여학생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인지라,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은 길을 모두 비춰주지 못했고 후미진 계단길은 왠지 으슥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을 감각한 순간, 그 여학생 역시 나의 존재를 인지한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고개를 돌린 학생의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뭐지, 나를 지금 무서워하는 건가. 트레이닝복 차림에 눈썹을 덮는 긴 머리카락,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은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해를 받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보는 등 딴청을 피우며 걸음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기 시작했다.

계단길이 끝에 다다르자, 상가가 눈앞에 자리했다. 좁고 어두운 상가 안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현관이 보였다. 학생은 여전히 걸음을 재촉하며 상가에 들어섰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좁은 상가의 구조는, 뒤에 누군가 따라온다고 생각하면 주변이 트인 계단길보다 훨씬 두려움이 커질 것이다. 결국 나는 멈칫하던 걸음을 왼편으로 돌려, 넓은 길을 따라 쭉 돌아서 현관을 향해 걸었다. 어차피 땀은 흘렀고, 겸사겸사 산책 조금 더 한다고 치지 뭐.

길을 걸으며, 묘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어두운 골목에서 낯선 누군가가 같은 방향으로 뒤따라 걸을 때의 두려움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늦은 밤이나 새벽, 한적한 길가에서 낯선 이가 뒤에 자리한다면 의식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함 또한 들었다. 위협은커녕 누군가에게 주먹질 한 번 하지 않고 자라 온 27년의 세월. 폭력은 그간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고, 내가 손에 든 거라곤 아맛나, 바밤바와 쿠앤크 아이스크림뿐이었다. 공감과 억울함을 동시에 느끼며, 나는 이 양립하는 마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안전한 생활 교과를 가르쳤던 작년,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내용의 차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호기심 많은 눈빛으로 이유를 묻곤 했다.

  - 왜 낯선 사람들을 조심해야 해요?

  - 그거야 혹시 낯선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어서 그렇지.

  - 그럼, 낯선 사람은 전부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거예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낯선 이들이 모두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낯선 이들 중 악한 이들이 있을 확률 또한 존재한다. 결국은 가능성의 문제이며, 사회적 치안에 있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신뢰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가. 곳곳에 밝혀진 가로등과 불빛들, 도처에 널린 CCTV는 그러나 이러한 신뢰를 완벽히 증명해 내지 못한다. 묻지 마 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분노와 혐오의 축적은 조준 없는 테러를 부추긴다. 가능성의 세계에서 신뢰는 위태로우며, 교육은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훨씬 안전함을 단언했다. 문제는 두려움을 느끼는 여학생이나 억울함을 느끼는 나에게 있지 않았다. 신뢰가 헐거워진 사회의 가능성이라는 기반에 있으며, 신뢰의 틈을 메우지 못하는 가냘픈 가로등 불빛에 있었다. 여학생은 신뢰보다 경계가 더욱 안전한 사회에서 위협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으며, 나는 경계보다 신뢰가 더욱 어려워진 사회에서 가능성으로 투영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꼈다.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 사이에는, 서로가 감각하는 나약한 신뢰의 단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 간의 신뢰를 수호하기 위해 사회는 구조적 접근과 설계를 이루어나간다. 가로등 불빛을 곳곳에 설치하고, 후미진 곳을 넓은 길로 재구성하며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 관리, 단속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접근은 개인의 행위 자체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접근은 예방적이자 동시에 사후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길을 빙 돌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른손을 바라보니, 아이스크림 세 개가 나란히 들려 있다. 아맛나, 바밤바와 쿠앤크. 문득 생각한다. 이 아이스크림들이라면 조금은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귀여운 밤 그림이 그려진 바밤바, 투박한 디자인의 아맛나와 쿠앤크가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은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얼마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상처를 주고 혐오를 자아내며, 혼란을 야기하고 이성을 교란시키는 언어의 부조리 속에서 아이스크림의 이 이름들은 이토록 무해하고 순수하며 그렇기에 아름답다. 어느새 집이 눈앞에 보이고, 완연한 밤이 된 하늘 위엔 가로등 불빛을 닮은 달이 걸려 있다. 나는 봉지 겉면에 적힌 단어들을 입안에 가만히 머금으며,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휘두른 채 길었던 하루의 외출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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