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이어지는 가을, 간만에 비가 내렸다. 오전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빗줄기는 점차 굵어지더니, 어느새 거센 소리와 함께 교정을 가득 적셨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급히 반으로 들어왔고, 중간놀이 시간이 끝나 이동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인원을 셈하던 나는, 곧이어 사내아이 셋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알람이 역할을 맡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최근 맛 들인 곤충 채집에 빠져 시간도 잊은 채 운동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비가 추적였고, 필시 아이들의 옷은 젖었을 터였다. 우선 급히 창밖으로 아이들을 부른 후, 남은 아이들을 교담 수업에 보내고 반에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약 5분 후, 흙이 가득 묻은 실내화를 손에 쥔 채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걸어오는 게 눈에 보였다.
- 몇 시야?
- …
- 왜 늦었니?
- 곤충 잡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물론, 그 심정이 이해되었지만 최근 곤충에 빠져 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빈번했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약속을 상기시킨 후, 오늘은 비가 내리니 외부 곤충 채집을 금지시켰다. 더러워진 실내화를 화장실에서 닦고 난 후, 아이들을 위층 교실에 데려가 수업을 보냈다. 앞서 걷는 아이들의 상의는 비로 인해 곳곳이 흥건했다. 물론, 아이들은 그런 것쯤은 상관하지 않았다.
교실로 돌아와, 시간을 몰랐다는 아이들의 말을 가만히 되새겼다. 왠지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이들에게 곤충은 단순한 생물 이상의 존재다. 이름을 붙이고 집을 지어주는가 하면, 매일 먹이를 주고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러 달려가곤 한다. 곤충을 관찰하고 데려오는 아이들의 시간은 사랑이었다. 내리는 비도, 수업을 알리는 시간도 아이들에겐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현재적이고 순간적이며, 아이들은 완벽히 그 순간에 몰입해 있었다.
시간은 평등하며 일정하다. 나의 1분과 상대방의 1분은 같으며, 행복한 순간과 고통스러운 순간 역시 같은 속도로 흐르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이 질서정연한 시간 아래 우리가 구가하는 사랑은 불규칙적이며 무질서하다. 사랑에 몰입하는 순간, 과거와 미래의 층위는 현재의 인식 아래 소멸하고 만다. 사랑하는 동안, 1분 1초는 더 이상 보편화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순간은 영원해지며, 2차원의 공간 속 선형이었던 시간은 하나의 거대한 점으로 결집하며 팽창한다. 물론, 시간은 유한하다. 아무리 순간을 영원히 감각하더라도, 실재하는 끝은 사랑의 종결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고통스럽다. 사랑은,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극복하려는 지난하고 달콤한 노력이다.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는 이중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연인 사비에르에게 아이다가 건네는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다의 편지는 여러 날이 지나 사비에르에게 닿는다. 각자 다른 시간의 층위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럼에도 서로를 놓지 않는 까닭은 시간을 극복하는 마음에 있다. 아이다는 말한다. ‘그들이 당신에게 이중 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은 믿지 않게 되었어요.’ 그들은 보편적 시간의 법칙을 초월한다. 아이다의 편지는 한참 후에야 사비에르에게 건네지고, 사비에르가 읽는 편지 속 아이다는 과거의 존재다. 그러나, 그러한 물리적 시차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쓰는 아이다와 편지를 읽는 사비에르의 시간은 동일하다. 과거와 미래는 동시성을 띤 채 현재 안에 수렴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다.
영화 <인터스텔라>(2014) 역시 이러한 시간의 극복을 보여준다. 조셉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우주를 탐사하던 도중, 5차원의 블랙홀에 빠져 시공간의 뒤틀린 경계를 지난다. 빨려 들어간 그가 내던져진 곳은, 무수한 시간들 속에 자리한 그의 딸 머피(맥켄지 포이)의 방이다. 쿠퍼는 머피의 방을 통과하며 깨닫는다. ‘사랑이야, 타스. 머피에 대한 나의 사랑, 그게 열쇠야.’ 쿠퍼는 시계 초침에 마음을 모스 부호로 데이터화하여 머피에게 전달하고,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한다. 영화는 5차원의 거대한 원리와 공식을 지나지만, 결국 유한한 인간이 시간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끝내 다시 마주한 머피는 아흔이 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쿠퍼와 머피는 여전히 부녀지간이다. 물리적 시간을 넘어선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특수한 시간 체계에 기인한다. 영화는 과학이라는 하늘을 비행하여 인간이라는 육지에 착륙한다. 목적지에 다다른 땅 위에는, 마음이라는 숲이 바람을 따라 일렁이며 여행자를 가만히 맞이한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하교 인사와 함께 교실 밖을 떠나는 아이들 틈에서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이제 곤충 잡아도 돼요?’ 비는 다행히 그쳤고, 나는 약속은 약속이니 다음에는 늦지 말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를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문득 창밖을 보니, 익숙한 가방을 멘 아이가 수풀 속에 쪼그려 앉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고, 시선의 끝에 다다른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흐릿한 먹구름들 사이로 가냘픈 햇빛이 드리우던 오후. 날씨 예보에서는 잠시 후 비가 다시 내릴 것임을 알렸다. 그러나, 메뚜기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잠시 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시간은 메뚜기와 함께하는 그 순간에 머무를 것이며, 비는 영원히 그들에게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유유히 흐르며 점점 해를 가리고 있었다. 나의 시간은 지금쯤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아이다는 편지를 썼고, 쿠퍼는 블랙홀을 통과했으며 아이는 숲으로 향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나는 각자의 시간을 여행하는 그들에게 어떤 따듯함과 부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