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수능을 앞두고 사관학교 체력테스트를 합격하겠다고 운동장을 뛰었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인생 단 하나의 꿈은 사관생도였고, 당연히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2002년 월드컵 시즌이어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히딩크의 열풍으로 간절하면, 원하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떨어졌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한동안 재수를 꿈꿀만큼 미련이 남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그 뒤로 그저 하루 하루 살다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됐고, 사직도 이직도 해봤다. 돌연 공인노무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퇴직금 탈탈 털어 공부에 올인해보기도 했다.
모두 될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면 다 되는줄 알았고, 거기에 들인 시간과 돈과 노력이라면 됐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인생은 만만하지 않았다.
인생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덜컥 임신이 됐고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이가 3살이 될 즈음 계약직 사원으로 창업 지원 업무를 맡게 됐다. 꿈도 전공도 이미 부질 없었다. 대학은 이력서 한줄용이었고, 경력은 물이 된지 오래였다. 그렇게 2년 계약직 이후 회사를 옮긴 지금은 고객관리 및 대외홍보 업무다.
단 한번도 한가지 분야에서 올인해보지 못했다. 경력을 나열하여 이력서를 제출해도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늘상 새로운일이 주어졌다. 당황할 사이도 없이 그저 맞닥드린 상황에 맞춰 일을했고, 해야하는 것들을 했다.
워낙 이일 저일,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고 새로운 일들을 했던 탓에 인생살이에 나름 도가 터버렸다. 처음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때만 해도 '이대로 다른 회사를 못 구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했으나, 다시 회사를 구하고 다녀보니 '죽으란법은 없네.'라는 깡따구가 생겼다. 백수 생활을 경험하면서 남는 시간 글도 썼고, 못 읽은 책들도 원없이 읽었다.
공인노무사 시험에 떨어질 줄도 몰랐고,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금방 실증을 내는 성격임에도 글에 흠뻑 빠져서 지금까지 쓰고 있을 줄도 몰랐다. 이렇게 사람일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하는 사소한 일들이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켜 잔잔한 인생에 파도가 일게 할지 모르기에 매사가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게 팍팍하고 재미도 없고 한없이 무료한거 같지만,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황금기도 있었고, 잊지 못할 찰나의 순간이 있다. 막연하지만 결국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게 잘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