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고 두 번 났다고 쫄 순 없지...!
이상한 운전 버릇이 생겨버렸다.
아주 골치 아프도록 신경 쓰인단 말이지...!
요즘 들어 이상한 운전 버릇이 생겼다.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별문제 없이 잘 왔음에도 불구하고 운전 중 잘못한 점들이 없는지 되감는 버릇이다. 아직 운전 경험이 많이 없기 때문에 오답노트같이 보이지만 다른 결의 느낌이었다. 운전 노하우를 공부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찝찝한 부분을 되짚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려 생각하는 것,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가. 나의 버릇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을 하며 마주친 찰나의 기억들을 더듬으려고 하니 머리가 아팠다.
운전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상황들, 모두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을 때, 잘못하지 않았을 때 모두를 포함해서 말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길을 잘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을 마주할 때, 횡단보도가 따로 없는 길에서 차가 채 지나가기 전, 차와 가깝게 붙어 길을 건너가는 행인을 봤을 때, 차선 변경을 할 때 실수로 사각지대에 있는 차를 보지 못해 빵 소리를 들었을 때 등의 상황들 말이다. 특히나 '사람'에 있어 이런 상황들이 생기면 흠칫 놀라곤 했다.
'아 왜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못한 것 같지?'라는 생각이 들면 나의 운전 마스터인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털어놓았다.
'아빠 있잖아, 내가 오늘 운전을 잘하고 가고 있었는 데에, 어쩌고 저쩌고...'
'운전을 할 때는 신경을 안 써야 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라며 신신당부를 하시던 아빠는 나날이 잦아지는 딸의 이상증세에 결국 내 머리에 딱밤을 꽁! 쥐며 말씀하셨다.
"왜! 오늘은 또 뭔데! 너 왜 안 하던 이상한 버릇이 생겼냐?!"
멀쩡히 잘 운전하고 다니다가 왜 갑자기 이런 버릇이 생긴 걸까? 오늘 글을 쓰면서 탐정(?)이 되어 그 미스터리를 풀어봐야겠다.
첫 번째 미스터리 해결 열쇠
이예령의 운전 노하우 부족으로 예상
우선, 요상한 버릇이 생기기 전의 운전일지를 돌아봐야겠다. 첫 번째 운전 일지를 적은 글에서 나는 분명히 이렇게 적은 바 있다.
'1년 뒤, 동생과 함께 제주도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고 있을 멋진 자매의 모습을 그리며! 또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도로를 점령하는 야심 찬 로망을 품은 나와 같은 모든 초보운전자들의 행복한 상상에 후-!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배시시 짓는 미소와 함께 온점을 찍는다.'
하지만 웬걸, 자신 있게 적은 내가 머쓱할 만큼 나는 아직도 운전을 할 때 겁이 많다. 아직 운전 노하우가 부족하다 보니 임기응변에 센스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한몫을 하는 듯했다. 또 한 가지, 처음으로 얻게 된 소중한 나의 중고 차지만 부정할 수 없게도 차가 많이 낡았다. 하루는 친구를 태우고 대천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야심 찬 계획을 세웠던 날이었다.
"아빠! 나 주말에 친구 데리고 대천 해수욕장으로 드라이브 갈까 하는데, 잘할 수 있겠지?"
기대에 부풀어 건넨 나의 말에 돌아온 아빠의 답변은 심상치 않았다.
"글쎄다, 근데 아빠 생각엔 차가 많이 낡아서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장거리 운전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갈 거면 안전하게 기차 타고 다녀와."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집에서 대천까지 약 2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이 거리도 불안한 정도라니.
'뭐야, 진짜 가다가 멈추기라도 하는 거 아냐...?'
생각지도 못했던 아빠의 답변을 듣고 나니 괜스레 겁이 났다. 평소에도 고장으로 카센터를 자주 드나들었던 만큼 아빠가 걱정하는 상황이 현실이 될까 봐 무서웠다. 심지어 남자 친구와 함께 붕붕이 세차를 했을 때에도 자리 이동을 위해 잠시 내 차를 몰아보더니 이 차로는 불안해서 어디 못 가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들로 운전대를 잡은 지 1년이 넘은 나는 아직도 편도 2시간이 넘는 장거리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
서론이 길었는데, 한 마디로 운전 경험이 적다는 말이다. 차선을 변경하기 전, 이제는 창문 뒤로 고개를 쓱 돌려 확인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운전 시야가 좁다. 가끔씩 사각지대에 있는 차들을 미처 못 보고 차선을 옮기다가 앙칼진 클랙슨 소리를 들은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 날이면 완벽하게 운전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다신 안 그래야지, 조심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운전은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꽉꽉 막힌 퇴근시간 도로 위 3차선. 1차선으로 이동하려면 눈에 지진이 나기 시작한다. 고작 두 칸을 이동하는 건데 만리길이라도 가는 것처럼 멀어 보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깜빡이를 켜고 차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러다 타이밍을 놓쳐 집으로 가는 골목을 놓쳐버리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마음 졸인 날들이 잦아졌다. 그냥 내가 운전을 못하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극초 보일 때보다도 예민하고 겁이 많아진 건 확실했기에, 분명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의 사건 일지
이예령의 운전 트라우마 생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
'끽-! 드르르르ㅡ르륽'
그대로 우리 셋은 얼음이 되었다. 숨결보다 짧은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엄마도 동생도 나도 그대로 일시 정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제발 다른 차에서 들린 소리이기를 그 짧은 순간 기도했지만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빗겨나가질 않는 것이 국룰이다. 지난번 운전일지에서 다룬 레카차 충돌사고에 이은 두 번째 충돌 사고였다. 엄마와 동생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창 쪽으로 고개를 쭈욱 빼고 '뭐야?'만 반복하고 있었다. 핸들을 부여잡은 나의 입에서는 조그맣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 망했다.'
저번 사고와는 달리 아빠도 없었던지라 두 눈 가득 떨리는 동공 지진을 머금고 비상등을 켰다.
이번 사고 장소는 백화점 주차장이었다. 백화점이 한창 바글거릴 화창한 주말 낮이었다. 주말에 차를 끌고 백화점에 온 건 처음이었는데, 야속하게도 그 첫 경험이 안 좋은 기억으로 얼룩져버리고 말았다. 그날따라 나가려는 차와 들어가려는 차들이 꼬인 것인지 빽빽하게 줄지어 비상등을 깜빡이고 서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주차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도통 줄지를 않으니 우리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오늘 날 잘못 골랐다'는 말만 연신 내뱉고 있었다. 차들이 빠질 공간을 내기 위해 최대한 옆쪽으로 가만히 붙어 선채 내가 지나갈 공간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붙으면 좋을 것 같았지만 옆쪽에 주차되어 있는 차의 바퀴가 휙 틀어져 툭 튀어나와 있는 바람에 더 이상 붙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던 상황이었다. 불길한 소리가 들려온 건 그 찰나였다. 개미 발걸음만큼 차들이 움직이며 조금씩 빠져나가던 그때, 뒷바퀴 쪽에서 무언가 긁히는 듯한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 움직였어...? 나 가만히 있지 않았어?'
차에서 나가기 전, 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냐 안 움직였어, 우리 가만히 있었어'
동생이 답했다.
엄마와 동생의 소란스러운 대화를 뒤로 한 채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안전벨트를 풀고 차문에 손을 얹었다. 차창으로 상대편 차주분이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벌컥 문을 열었다. 내가 문을 여는 순간 나를 마주한 뒤 바뀌었던 아저씨의 눈빛을 기억한다. 짧은 찰나였고, 상황도 상황이었던지라 내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순간에 내가 읽은 그분의 눈빛은 '무시'로 느껴졌다. 아직 그 누가 잘못한 것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지만, 150대의 작은 키에 어려 보이는 차주가 문을 열고 나오니 표정과 말투부터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나의 객관적인 느낌인 줄 알았지만, 차 안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엄마와 동생조차 나에게 대하는 그분의 태도를 나와 같게 느꼈다니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다.
'아니 아가씨, 이쪽에 차를 더 붙였어야지 왜 안 붙여요?'
아저씨는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가만히 옆에 붙어서 서있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지...?' 하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찰나, 동생에게 사고 상황을 들은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일단 누가 잘못한 건지 정확하지 않은 상황이니 차분하게 보험을 부르고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보험 측에 연락했다. 상대편 차에 함께 타계셨던 아주머니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며 보험을 기다리고 있던 순간에도 아저씨께선 차가 긁힌 것에 분이 가시질 않는지 자꾸만 '아가씨가 차를 움직여서 그렇다.' '차를 옆쪽으로 더 붙였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라며 본인의 주장을 번복하며 반복했다.
만약, 그분 주장대로 내가 차를 움직였다면 오히려 부딪힌 상황이 자연스러웠을지 모르나 내가 붙어서 서 있던 순간에도 옆 차들은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며 빠져나가고 있었기에 더욱 정차해 있었던 나의 상황은 당연한 것이었다. 차가 긁힌 부분도 뒷바퀴 쪽이었기에 더욱 이상했다. 상대 차가 긁힌 곳도 뒷바퀴 쪽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차 머리부터 빠져나가지 못했던 상태에서 긁힌 것이라면 이해가 가나, 거의 다 빠져나가서 부딪혔기에 정말 내가 잘못한 부분인 건지 의심이 갔다.
옆쪽에 바퀴가 툭 튀어나온 차를 가리키며 이 상황에서는 제가 붙은 것이 최선이었다며 말하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동의하셨지만, 아저씨는 계속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상황이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저분이 잘못한 건데 나에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인지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심지어 계속해서 그 상황을 되새기다 보니 정말 내가 차를 움직인 건가 싶어 몇 번이고 동생과 엄마에게 확인했다. 그 순간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야속하게도 블랙박스조차 고장 나있던 상태라 설상가상이었다.
이내 도착한 보험 측에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이리저리 상황을 확인하고 상대편 주장과 차의 상태도 확인하고 돌아오시더니 어떻게 상황을 처리할지 말씀해주셨다.
'상황을 보아하니 제가 볼 땐 차주분에겐 잘못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주차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서로 움직인 상황이 포착되면 둘 다 과실을 물 수 있어요. 지금 상대측 주장으로 봐서는 입원을 하거나 합의가 어렵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주차장 cctv를 통해 자세한 사고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도 보이니 댁으로 가서 상황을 지켜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일단은 제삼자가 봤을 때도 우리 측 잘못은 없어 보인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으나,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정말 입원이라도 하거나 고소를 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초조하게 아빠만 기다리고 있던 저녁, 보험 측과 직접 통화를 마친 아빠는 상대측과 합의를 봤다고 말씀하셨다. 그분들도 결국은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한 것 같다며 다음부터는 사고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며 당부하셨다. 상황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벌써 두 번째 사고이다. 앞으로 운전을 하며 수많은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 텐데, 그때마다 내가 잘 처리하고 상황판단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생겨났던 하루였다.
두 번째 미스터리 해결 열쇠
두 번의 사고, 나도 모르게 생겨버린 트라우마로 추정
지난 레카차 충돌사고 이후, 꽤 큰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아무렇지 않게 운전을 잘하고 다녔다고 생각했었다. 사고 나던 순간의 느낌이 어느 정도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곳곳에 작은 변화들이 생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와 차가 박히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다 보니 차간 간격에 더욱더 예민하게 신경 썼다. 차끼리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차선 변경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호를 받고 멈춰서는 정차의 상황이 아닌 차선 변경과 같은 주행 중에서는 특히나 긴장되었다. 어떤 상황이 불시에 생길지 모르니 항상 모든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고 나니, 길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신경 써야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충돌사고를 겪었다. 차의 표면끼리 긁힐 때 나는 바득 거리는 거친 소리가 더욱 완벽히 머리에 각인되어버렸다. 이제는 길을 가다 돌 같은 것을 밟아도, 트렁크에 있는 짐이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만 들어도 움찔거렸다. 이러니, 앞서 이야기했던 주행 중 발생하는 찰나의 상황들에 대해 하나씩 다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으면 매우 찝찝했던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나는 이 버릇을 극복할 방법이 필요하다.
사고 두 번 났다고 쫄 순 없지
자신감으로 밀어붙여!
지난 글에서 나는 운전하는 게 즐거운 이유가 '성취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취감' 받고! 이 글을 쓰며 운전이 좋아지게 만들었던 또 한 가지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뿌듯함'이다. 주행 중 양보하고 받는 앞 차의 비상등 인사와 구급차가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을 때, 혹은 길을 건너기 위해 분주히 고개를 돌리며 주저하던 행인의 걸음을 양보하고 받은 가벼운 눈인사. 여기서 오는 작은 뿌듯함은 나의 운전 고민들을 묵은 때 날리듯 한방에 날려주는 시원한 물대포와도 같은 소중한 보람들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할 방법, 꽤 단순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사고로 인해 얻게 된 나의 '버릇'은 트라우마라는 얼굴을 갖고 있지만, 어쩌면 순전히 운전을 '잘'하고 싶어서 생겨난 '습관'일지 모른다. 그럼 그 습관, 지난날들을 경험 삼아 좀 더 유연하게 여유를 갖고 노하우로 바꿔버리면 그만이지 않을까? 내가 한 번 더 양보하고, 내가 먼저 조심하고, 이전보다는 좀 더 넓어진 시야를 갖고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전국을 누비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운전은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백번 끄덕여 인정한다. 언젠가 또 적게 될 세 번째 운전일지에는 부디, 사고 에피소드는 없는 멋진 곳을 운전하고 온 베스트 드라이버(?)의 일지이길 바라며. 두 번째 운전일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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