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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Oct 05. 2023

떠나는 이유

떠난 자리엔 발자국이 남는다



2020년 6월 26일 21시


[떠나는 이유]

떠남이 남기고 간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이
새로움 그 자체의 기쁨을 줄 수 있게 하기 위해

항상 마주하고 있던 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내가 겪고 느끼게 될
훗날의 감정에 맡기기 위해

마주하기 싫은 것들,
나의 마음을 할퀴는 것들에 있어
나의 당돌한 자존심만큼은 지켜내기 위해

0, 미지의 출발점에 또다시 서서
1,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 머물고 떠나간 자리의 위엔
항상 또 다른 새로움이 머물기 마련이니까.

각자의 이야기들을 담아 서서히 돌아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익숙해진 곳들과 떨어져 또다시 새롭게 적응해야 함에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렵고 무서운 마음, 마음속 어딘가 무겁기도 하면서도 그럼에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발선에서 발을 떼는 이유.


나는 항상 '새로움'이라는 단어 앞에 설렘과 두려움을 반씩 안고 나아갔던 것 같다. 설레지만 걱정되고 걱정되지만 기대되는 감정. '미지'라는 단어가 떠오르듯 언제나 출발선은 나에게 큰 도전과 같았다.


동시에 여러 의미도 담고 있었다. 내 의지로 떠나는 출발보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해서 내딛는 발걸음이 될 때도 있었으며 아직 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내딛는 불안한 출발이 더욱 많았다. 돌아보니 무언가에 쫓기듯, 그래서 떠밀려가듯 나는 나를 시험해 왔음을 깨달았다.


왜 나는 나를 위한 온전한 선택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했던 걸까? 나의 이상과 나의 꿈을 실현시킬 사람은 나인데 왜 내면의 목소리보다 외부의 목소리와 행동에 반응했을까. 20대의 후반을 맞이한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그린 출발선'이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도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남들이 그려놓은 출발선이 아닌 진짜 내 마음으로 그어낸 출발선이 진짜 도전이자 출발이라는 것을 나는 왜 몰랐던 걸까.


[도전]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생각해 보면 도전이라는 것 자체는 모르는 일들의 투성이인 것을, 그래서 스스로를 향한 믿음만이 그 도전에서 이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었다. 2020년의 대학교 졸업을 앞둔 나는 새로운 갈래의 출발선에 서서 지금의 나와 다를 것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앞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속도와 비례하게 달리기 위해서는 온전히 준비되지 않은 나여도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을 것이다.


지난 8월,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이직에 대해서도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이번 선택만큼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있어 그 자체로도 큰 도전이었다. 나를 위한 새로운 선택에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지난날의 다짐 덕일까. 지난날들의 아픔이 세월을 입어 굳은살로 배긴 덕일까. 지치지 않았다. 또다시 시작된 왕복 세 시간의 출근길이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실수에 오랫동안 얽매여 나를 자책하지 않았다. 더 나은 내가 되어볼 것이라는 다짐으로 그려낸 출발선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과거와 같은 어려움에 멈춰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각오는 내 선택을 지치지 않게 만드는 새로운 에너지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아, 이런 게 바로 도전이었구나'




저물어가는 태양이 어딘가
떠밀려 가던 내 뒷모습 같아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남김없이 사라져 버릴까

돌아가자
벌써 모두 가버렸으니까
아쉬운 것 투성이지만
아름다운건 끝이 있다는 것 아닐까

하현상 '불꽃놀이' 중


최근에 자주 듣게 된 하현상의 불꽃놀이라는 노래 중 이 한 줄이 계속 곱씹게 만들었다. 붉고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청춘이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내뿜듯 저마다의 빛들을 뿜어낸다. 도전과 절망, 행복과 웃음. 모든 것들을 품고 내뿜다가 말끔히 사라지는 불빛들이 모여 자아내는 아름다운 불꽃놀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불꽃이지만 우리는, 그리고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불꽃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아 쓸쓸하면서도 홀연한 위로가 되었던 노래였다. 20년의 나도, 23년의 나도 훗날의 내가 뒤돌아보면 그 자체만으로 나였고 빛났던 날들임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떠난 자리엔 발자국이 남는다. 새로운 길 위에 나의 무게를 싣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하나의 지나온 길이 되어 남는다. 그 파인 발자국 속에 우린 많은 것들을 담는다. 미련과 슬픔과 같은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뒤로 남겨둔 채 깨끗한 길 위에 또다시 발을 디딘다. 멀리 펼쳐진 깨끗한 길 위를 파이고, 그것들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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