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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Oct 03. 2024

실수, 어떻게 딛나요

오직 나만이 풀어야 하는 숙제라서



2024년 09월 18일 4시


괜찮아.라는 말이 습관이 되었다.

괜찮지 않아.라는 말이
어딘가 반항적인 것 같기도,
괜찮냐는 배려의 질문에
그렇지 못한 정답을 내놓는 것 같아
그렇게 계속 괜찮다 했다.

거짓된 마음으로 얻게 된 건
나의 괜찮지 않음을 괜찮음으로 애써
덮으려 했던 그릇된 신뢰와 나쁜 습관이었다.

나에게 솔직하지 못한 어설픈 진심이
계속해서 문드러져갔다.





남에게는 그리도 온 맘을 다해 사랑을 주는 내가 가장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나를 사랑하기'


상대에게 너그러운 만큼 나 자신은 이해해주지 못했고, 상대의 좋은 점들은 칭찬해 주고 북돋아주면서 정작 나에게는 가혹하게 굴었다. 그래서일까? 항상 나는 작아 보였다.


입사한 지 1년 차가 되었다. 느리게만 지나가는 줄 알았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덧 1년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 근래에 나는 힘차게 집을 나섰다가도 한순간에 우울해지곤 했다. 어딘가 헛헛하고 계속 무언가가 비어져있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계속 북돋으며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일을 하다 보니 그간 실수도 종종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하는 작은 실수였지만 항상 그 실수를 제대로 마주하질 못했다. 그 작은 실수가 나에겐 커다란 흠 같이 느껴졌고, 계속 곱씹으며 그 흠을 파내고 파내다 보면 어딘가가 뻥 뚫려버린 듯한 허탈함을 느꼈다. 완벽하고 깔끔하게 주어진 일을 해내고 싶던 나는, 나에게 조금도 그 실수를 용납시키지 못했다. 항상 덜렁거리고 잘 까먹는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항상 완벽하고 싶었다. 단순하게 일을 할 때만이 아닌, 그냥 '나'라는 사람이 남에게 있어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실수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너무 드리니 하루는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실수한 걸로 너무 주눅 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실수는 많이 해요. 하지만 어쨌든 일어난 건 일어난 일이니 인정할 건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예령씨의 평소 모습을 보았을 때 앞으로 더욱 꼼꼼하게 잘 봐주실 거라 생각되어서 크게 걱정하진 않아요!'


너무나 감사하고 힘이 나는 말이었다. 티를 내고 싶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드러난 걸까, 드디어 곪고 곪아서 그 상처가 다른 이에게도 보이게 된 걸까.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았다. 항상 하고 싶은 것들도 많고, 시작 전에 '잘할 수 있지! 이 정도는 자신 있지!'하고 시작하지만 한계를 부딪힐 때마다 주저앉아버리는 내가 많이도 미웠다. '잘하고 싶다' , '완벽하고 싶다'라는 그 틀에서 여전히 한치의 빈 틈도 용서를 못했다. 그걸 딛고 일어서게 할 사람은 바로 나였지만 그 몹쓸 습관들이 나를 밑바닥까지 내리찍고서야 그 고민은 잠시나마 잊혔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결승선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란 것을 인지하기


내가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남들의 속도에 맞춰서 가려면 곱절로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머릿속 한편의 작아지기 싫은 자존감을 누르고 나를 괴롭힐 만큼 '나는 왜 남들보다 못할까'에 대한 흠이 커지던 찰나, 함께 입사했던 동료에게 조심스레 고민을 이야기했다.


'자꾸 자신을 탓할 이유를 찾지 말아요! 저도 그랬는데 계속 실수나 자신의 역량에 대해 흠만 쫒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속도가 30이고 남들은 70인걸 알지만 각자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데 그걸 뛰어넘겠다고 자신을 탓해가며 쫒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느려도 제 속도에 맞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제일 어렵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눈물이 고일 줄은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맞다. 토끼와 거북이처럼 느려도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간 결승점에 와닿기 마련이다. 이야기를 듣고 '이전에는 나도 꿈에 대해 당찬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작아진 걸까?' 생각해 보았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나에겐 없는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사회에 나오니 더욱 뛰어난 사람들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 '난 그 사람들 속에서도 잘하는 게 과연 뭐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왜 평범하디 평범한 걸까?' 계속 생각했다. 남들의 시선 속에 비쳐질 나를 마주하려했고, 그러다보니 방향을 잃어 나도 나를 잘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난 나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 숙제를 풀어야 할 사람은 나라는 걸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상기한다. 나의 약한 모습들을 탓하기보단 인정하고, 실수를 바로 보고, 끝까지 노력해 보는 것. 제일 어렵지만 앞으로의 평생 동안 많은 경험들을 겪으며 계속해야 할 과제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글로나마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취미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PS. 나를 비롯한 모두가 각자의 레이스에서 아름다운 빛을 맞이하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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