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센 것들이 주는 마음
2019년 11월 06일
꽃이 피고, 여름이 오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온다
수많은 날들의 흐름대로 태어나고 식어가는
자연의 시간들과 함께
나는 곧은길을 가고 있을까
흘러가는 시간에 셀 수 없는 가치를 담고
버려야 할 잡심들을 비워가며
자연히 그 속에 스며들어
한 해를 완성한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간 따라
나의 소중한 마음들도 새로이 움트겠지
가장 연약해 보여도, 가장 강한 것
일상에서 느낀 작은 교훈
추운 날씨 때문에 그런지 왠지 모르게 요즘은 뭘 해도 힘이 빠지는 듯하다. 밥을 먹는 것도,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것도 귀찮고, 오랜만에 카페에 나가서 할 일들을 해볼까 하는 것도 잠시. 모든 게 귀찮은 요즘이다. 겨울잠이 필요한 걸까, 힐링이 필요한 걸까. 뭐든 나에겐 작게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소름 돋게 같은 일상의 바퀴 속에서 살다 보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내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도 신경 쓰지 못할 때가 많다. 따분한 일상에도 내가 시간의 흐름을 의식할 수 있었던 건 항상 같은 곳을 지키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나무라던가, 아침에 뜬 달이라던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시간에 따라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들. 내가 날씨나 계절을 보면 항상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번에도 나무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일을 하다 잠깐 고개를 들면 보이는 나무 한그루가 계절에 따라 열심히 옷을 바꿔 입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곤 했다. 아직도 그 감정이 뭔지는 정확히 깨닫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푸릇했던 나무가 노랗게 익는데 불과 일주일 반의 시간이 흐른듯했고 또 앙상해지기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잎이 다 떨어졌네’라고 생각하며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유난히 한 구간이 밝게 부셨다. 저절로 돌아간 눈에 담긴 건 노랗게 밝힌 가로등과 그 아래 소복이 쌓여있던 많은 은행나무잎이었다. 그 많던 잎들은 어디 갔나 했는데, 바로 그 아래에 모여 있었다니.
아무도 모를 수 있던, 눈여겨 담지 못했던 나무 한그루의 시간이 위로가 되어 마음에 담겼다. 찰나를 담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퇴근길이었다. 타인이든 사물이든 나 자신이든 누군가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다는 건 꽤 소중한 일인 듯하다. 이런 시간을 빌려 잠시나마 나의 정신없는 일상을 다잡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는 건 변함없이 곁에 있어주겠다는 무언의 말과 같다는 걸 이렇게 또 한 번 느낀다.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고, 그 따스한 존재의 볕에서 위로받을 수 있음에 감사해하는 사람이 되자. 그런 안온함을 지닌 사람이 되자. 다시 한번 되새긴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다가 하늘에 뜬 달을 봤다. 가만히 보다가 카메라를 들어 찍고 나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해가 뜬 지 오래인데 왜 아직도 달이 떠있지?’
겨울이라 그런가 하며 미루어 짐작해 보다 휴대폰을 켜고 검색을 했다. 보름달은 뜨고 지는 속도가 느려 해가 질 무렵에 뜬 뒤 해가 뜨고 나서야 그 반대쪽으로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의 끝과 하루의 시작을 지키는 달이라. 하루가 떠오를 때 그 뒤를 지키며 물러난다는 사실이 왠지 든든하게 느껴졌다.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떠오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뒤를 지키는 사랑은 보름달을 닮았을까, 생각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떠오른 한 해가 저문다. 올해와 내년은 더군다나 한 주에 함께 있기에 더욱 평소와 같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듯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1월 1일이라는 숫자는 몇 년을 마주해도 묘하게 낯설다. 최근 자꾸만 잔병치레를 하는 바람에 공교롭게도 올해의 마지막 월, 화요일을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이 참에 몸 건강도 돌보며 한 해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내년에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모두의 한 해를 토닥이며 올해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