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끝까지 거북이 수영클럽>을 읽고
모든 면에서 나는 참 힘을 뺄 줄을 몰랐다. 아니 사실 모든 순간마다 쓸데없는 힘을 들이고 살았다.(p.43)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그랬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맏딸들이 대부분 그럴 것이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성실하게 부모님 말씀 듣고 성실하게 대학 졸업해 성실하게 취직해 일해야 한다고 배워서 지금껏 10여 년간 하루도 적당히 노는 법 없이 살았다.(p.45)
나는 승산 없는 싸움은 시작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한번 뛰어든 싸움에서는 반드시 끝장을 보고 만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피곤한 이런 성격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형성됐다. 무엇이든 목표를 정하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목차가 만들어졌다. 갖가지 경우의 수가 자동으로 정리돼 결국에는 그 시기가 언제든 성취하고자 한 걸 끝내 얻어 내고 말았다. 사람 사는 일은 계획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나이를 한참 먹은 뒤였다.(p.127)
중급반은 외롭다.팔을 풍차처럼 마구 돌려도 앞으로만 나아가면 된다 해서, 그러니까 사실은 '까라면 까라'는게 미덕이라 배워서 꾸역꾸역 앞으로 온 지 10년이다.(중략) 이 정도 살면 인생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리라 기대했는데 어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음을 깨달은 인생의 중급반들이리라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초급의 눈에는 수영을 제법 할 줄 아는, 그러나 상급반이 보기엔 아직 한참 어설픈, 무엇보다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 채 성장의 한계를 느낀 중급반들 말이다. (p.123)
상처가 아물었다는 건 그동안 우리가 겪은 마음고생이 우리에게 주는 훈장이다. 내 흉터를 가장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p.54)
인생의 어떤 순간을 뛰어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자라지 못한다.(p.158)
매일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도처에 매복해 있는 불운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인간의 내구성은 정말로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p.181)
부모가 된다는 건 한 인생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다. (p.80)
나중에 딸이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어렸는데, 그렇게 울었는데 나를 두고 수영을 가고 싶었어?'라고.(p.89)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직업이 두 개 라는 얘기다. (중략) 일하는 엄마라는 자리는 늘 생존과 과로사의 경계에 있는 삶이라는 걸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퇴근하면 엄마로서 출근 시작. 회사 업무와 집안일 사이에서 늘 마음 졸여야 하는 수비수 같은 자리라 수영은 이제 그림의 떡이다. (p.112)
워킹맘 수영인들이 '그깟 수영'을 절박하게 하려는 이유는 워킹맘을 둘러싼 세상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다.(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