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아침을 견디는 법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도, 나다.’

by 한정호

아침에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매장에 나왔다. 커피도 한 모금 마셨고, 해야 할 일도 딱히 없진 않다. 그런데 머리가 깜깜하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글 한 줄 쓰고 싶은 주제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멍하게 앉아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은 너무 거창하다. 지금의 나는 그냥…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에 가깝다.


1.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됐다는 신호

사람도 충전과 방전을 반복한다. 몸은 쉬었어도, 마음이 쌓아둔 피로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가게를 꾸려가면서 어느새 머릿속의 배터리가 바닥나버린다. 이럴 때 억지로 무언가를 해보려 하면 오히려 더 깊은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날엔 ‘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잠깐 멈춘다.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도, 나다.’

이걸 인정하는 데서부터 회복이 시작된다.


2. 멍한 시간을 그냥 통과시키기

글이 안 써질 땐, 쓰지 않는다. 대신, ‘내가 지금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관찰한다. 커피잔의 김이 사라지는 걸 보고, 밖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사람을 본다.

이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머리 속이 복잡해서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을 때, 멍한 시간은 일종의 ‘정리 시간’이 된다.

우리의 뇌는 멈춰 있을 때, 오히려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그래서 정말 신기하게도, 하루나 이틀만 지나면 불현듯 어떤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그때가 다시 시작할 때다.


3. 작은 루틴으로 몸을 먼저 깨우기

머리가 깜깜한 날엔 생각보다 몸이 먼저 굳어 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라도 작은 루틴 하나를 실행한다.

예를 들어, 컵을 씻는다. 매장 앞 화분의 흙을 한번 뒤집는다.

‘그래, 글은 안 써도 오늘 사진 한 장만 찍자.’

이런 작은 행동이 기분의 전환점을 만들어준다. ‘무언가를 했다’는 아주 작은 성취감이 다시 엔진을 돌린다.


4. ‘아무 일도 없는 날’의 의미

생각해보면, 이상하게 기운이 없고 멍한 날이란 결국 ‘일이 없는 날’이다. 문제가 생긴 것도, 누가 상처 준 것도 아니다. 그저 모든 게 잠시 멈춘 날.

그런 날이 없었다면, 우리는 계속 앞으로만 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은 나를 쉬게 하려고 삶이 일부러 만들어준 ‘정지화면’일지도 모른다.


5. 다시 조금씩

이 글도 처음엔 아무 말도 안 써졌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안 나는 내 상태’를 그대로 쓰기 시작하니 조금씩 문장이 이어졌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냥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면 다시 쓸 말이, 다시 살아갈 이유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6. 마음이 조금 돌아온다는 신호

길거리에 쓰레기 봉투들이 쌓여 있고, 큰 청소차가 와서 미화원들이 고무장갑 하나만 낀 손으로

묵묵히 그것들을 들어 올린다. 나는 어제 새로 입고된 보름달 빵을 인원수대로 봉지에 담아 전해드렸다. 그 순간 문득 마음이 편해진다.

이건 거창한 선행이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작은 선물이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나를 조금 더 아끼면서 한 주를 다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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