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변한다
1975년 사이공의 옛 영상을 편집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 이거… 지금이랑 뭐가 달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오래된 건물들, 바쁘게 움직이는 시장 풍경까지. 카메라의 색감만 바뀌었을 뿐, 풍경 자체는 5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인 듯 하다.
물론, 베트남도 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된 나라다.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도로는 넓어졌고, 사람들의 복장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간은 놀랄 만큼 유지되고 있다. 특히 구도심의 풍경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생각은 나를 뜻밖의 기억으로 데려갔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부모님이 화곡동에 땅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 1985년 즈음, 우리 가족은 그 집에 입주했다. 지금은 많이 낡았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새집 냄새가 가득한 꿈의 공간이었다. 우장산을 넘어 등교하던 길도,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레 내려가던 산골도 기억이 생생하다.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러 집을 나서는 날이면, 200m 정도의 거리의 길을 내 모습이 사라질 때가지 먼발치서 서서 손을 흔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지워지지 않는다.
몇 년 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고등학교 총동창 운동회가 열렸다. 아들을 데리고 함께 아빠가 다니던 학교를 보여주고 싶었다. 먼저 화곡동 집을 찾았다. 화곡동 집을 처음 본 아들은 "와! 여기서 누나가 태어나고 살았어요?"라며 신기해 했다. 그리고 둘은 내가 산골을 넘어 등교를 하던 그 길을 함께 걸어 보았다. 그 당시 떠오른 생각은 '와… 여긴 진짜 하나도 안 바뀌었네.'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에도 화곡동 집을 혼자 둘러보고 온 적이 있는데 동네도, 거리도 변함이 없어 보였다. 그 때 있던 구멍가게도 그대로 있고, 짝사랑을 하면서 등교길에 몰래 그 여학생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뒤를 따라가던 자그마한 놀이터도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변한 건 그저 나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왜 나를 둘러싼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그대로 있을까?'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변한 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은 늘 과거에 멈춰 있고,
장소는 때로 그 기억을 조용히 간직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참 안 변한다.
결국, 사람만 변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삶이라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