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직원 급여일이다. 매니저가 퇴사하는 바람에 이번 달은 내가 직접 직원들 월급을 송금하게 되었다.
하나씩 이체를 진행하다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통장에 찍힌 이름이 직원의 이름이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름, 그리고 계좌 지점은 직원의 고향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거 네 가족 통장이지?”
그러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너는 뭘로 생활하는데…?”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지난 달 월급 중 아직 남은 게 있어요.”
그 순간,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다. 우리 딸보다도 어린 소녀가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일하며 번 돈을 전부 가족에게 보내는 모습. 그 표정 속에는 피곤함보다 자부심이, 자기 몫의 욕심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흔한 이야기
베트남에서 이런 풍경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대도시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매달 고향의 부모, 형제자매, 조카들에게 돈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에 가깝다. 월급날이 되면 은행이나 편의점 송금 창구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그들은 먼저 가족 몫을 보내고, 남은 돈으로 자취방 월세와 식비를 해결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듯,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가치관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가족의 삶이 개인의 삶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은 이곳의 사회적 토대이자 문화적 자산이다.
통계로 보는 가족 사랑
이 가족 중심의 송금 문화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2024년 베트남 전체 송금 규모는 약 160억 달러에 달했다. 그 중 호치민시가 무려 60%인 96억 달러를 차지했다. 2025년 상반기에도 호치민시는 52억 달러 이상을 받아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이 거대한 송금 흐름의 상당 부분은 해외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포와 노동자들로부터 온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약 500만~600만 명의 해외 베트남인이 매년 140억 달러 이상을 고향으로 보낸다. 이 돈은 단순한 경제 수치가 아니라, 고향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자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이 소녀의 미소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그 미소 속에는 ‘내가 힘들어도 괜찮다,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이번 주 초 일부러 하루 오전을 쉬게 하려고 내일 오전에 쉬어도 된다고 하자 몸 괜찮다고 하고 나오더니 다음 날 아침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느라 늦을 것 같다"고 보내온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직원의 마음이 이쁘다'고 해야 할까?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해야할까?'
한국에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이 많았다.
농촌에서 자란 청년이 도시로 나가 번 돈을 부모님께 보내던 시절, 서울에서 번 돈이 시골집 지붕을 새로 얹고 동생의 학비가 되던 시절.
베트남의 송금 문화는 그때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소중한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지도 모른다.
가족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다. 매일의 땀방울 속에, 은행 송금 영수증 속에, 환하게 웃는 얼굴 속에 담겨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베트남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