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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Jun 01. 2023

기상, 봄날

월간 지음지기: 2023년 6월 “아침식사 #1”

쿵 하고 딱 하는 소리가 들린 건 오전 11시 반 즈음이었다. 건축가의 설계대로라면 베란다 창가 쪽이었고, 집주인의 욕심에 따르자면 확장 공사를 마친 거실의 창가 쪽이었다. 그곳엔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고 의자엔 세입자 슈페트가 앉아 있었다. 때아닌 충돌음에 놀란 슈페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를 뒤로 뺐다. 소리가 난 곳 - 11이 그려져 있지만 55분이라고도 불리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얼룩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유리창 바깥쪽에 쩍 달라붙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검은색 깃털 몇 개가 짓뭉개져 덩어리를 이룬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기 구독하는 생물인 뉴스레터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도심 속 새들이 투명한 유리창에 충돌해 다치거나 죽는다는 기사를.


글라스 킬(glass kill)이 일어날 정도로 깨끗한 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더럽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슈페트의 마음을 살랑이게 하는 봄기운이 ‘죽이게’ 완연했고, 탁상 조명 대신 햇살을 원목 책상 위로 모셔오고 싶은 충동이 ‘죽도록’ 강했다. 그러기 위해선 암막 커튼을 창가 양 옆으로 밀어 두고 바깥쪽에 덧댄 시폰 커튼도 최소한 책상 너비만큼 젖혀둬야 했는데, 슈페트가 의자에 앉기 전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바로 커튼 정리였다. 주민들 사이에서 '암막커튼 세입자'라 불리는 슈페트치곤 의외의 행동이었다.  


죽었겠어, 설마.


생각은 저렇게 했어도 걱정이 가시진 않은 모양이다. 슈페트는 이중창을 하나 둘 걷어내더니 방충망까지 오른쪽으로 밀어내고 상체를 숙여 창 밖을 내다보았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대 자로 뻗어 있는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붉은 자국이 없는 걸로 보아 출혈은 없는 듯했지만, 움직임이 거의 없는 모양새가 기절한 것 같았다. 모기 말고는 날개 달린 생명체에 손을 가져다 댄 적이 없었다. 비록 두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의 크기였지만, 새를 흔들어 깨울 자신이 없었다.


에어컨을 작동시켜 볼까. 실외기가 부르르 떨면서 쟬 토닥이고 일으켜 세울지도 모르잖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새였는데, 어느새 쟤가 된 걸까. 이때까지만 해도 슈페트는 몰랐다. 일반명사가 인칭대명사가 되었을 때, 집 유리창에 머리 쿵 한 새와 세입자 사이에 관계란 게 시작된다는 것을. 지하철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설 때 나올 법한 음악이 에어컨에서 짧게 흘러나왔다. “냉방 운전을 시행합니다” 하는 안내 멘트도 함께였다. 슈페트는 방충망만 다시 닫고선 실외기 위를 살폈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진동하는 실외기까지 더해지자, 깃털 옷이 사르르 떨렸다. 에어컨은 목표 온도인 25도에 도달하기까지 3분이 걸린다는 멘트를 추가로 내뱉었다.


친구, 정신 차려.


에어컨이 목표 온도에 도달해 무풍 운전을 시작하자 실외기의 진동이 약해졌다. 여전히 미동 없는 녀석의 모습에 슈페트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무젓가락이 어디 있더라’ 하는 생각과 함께 방충망에서 뒤돌아섰다. 그때였다. 딱! 손톱이라도 깎은 듯한 소리가 실외기 쪽에서 들려왔다. 슈페트는 얼른 뒤를 돌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머릿깃털 몇 개 빠진 녀석이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발톱으로 실외기를 톡톡 때리고 있었다. 일어나려는 모양이었다.











위 글은 지음지기의 프로젝트 ㄴ(니은)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별히 2023년 6월, 한 달 간은 "아침식사"을 주제로 한 연작 글 네 편과 그림 네 개를 선보입니다. 


"아침식사"를 주제로 한 그림이 궁금하다면? 

지음지기의 그리는 사람(최정연 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세요!

<아침식사>, 최정연: https://blog.naver.com/choijungyon/223115944722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지음지기 인스타그램: http://www.instagram.com/drawnnwrittenby/

지음지기 포트폴리오: writtenndrawnby.notion.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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