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화

지음지기 비하인드 에세이

by 프로이데 전주현
주현언니와의 관계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공동체의 리더와 구성원으로 시작된 관계가 십년지기 친자매 같은 언니 동생 그리고 작업 파트너로 이어지다니요. 언니가 없었다면 이 책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제게 없는 모습을 언니를 통해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피어나는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지음지기는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 <숲에서 도토리 한 알을 주웠습니다> 중에서


오래 지속되는 인연이 있다. 행복한 일이다. 끝없이 서로에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거니까. 얼마나 든든한가. 제 경우, 그런 인연의 시작에는 우연이 많았다. 재미있는 일이다. 때문에 오래 '지속해 가는' 인연 대신 오래 '지속되는' 인연이라 적는다. 나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사람과 연결되긴 어렵에. 첫 창작 동료가 된 정연 작가와도 그러했다. 우리의 시작에도 우연이 있었다. 09학번 언니와 13학번 동생, 소망교회 대학부의 조장과 조원으로 처음 만났에.


처음으로 대학부에서 조장을 맡았던 때였다. 교회에서 내가 누굴 가르치거나 이끌 입장이 되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훈련을 받았으니 실전에 임해보지 않으면 리더의 감을 익힐 수 없다고들 했다. 저렇게 말을 하는 덴 다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침을 꼴딱 삼켰다. 그렇게 얼렁뚱땅, 용감하게 조를 맡게 되었다. 조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미리 전달받았다. 그런데 예배 후, 명단에 없던 친구 한 명이 조모임 장소의 문을 열고 쓱 들어왔다. 깨끗한 인상의 단발머리, 정연이었다. 정연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는데도 그때 그 첫 만남이 반가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첫 조모임답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대학생들이 모인 자리였으니 아무래도 전공 소개가 빠지질 않았다. 모두 전공이 달랐다. 그것만으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저의 대학생활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대부분이었기에 크게 다이내믹하지 않았는데. 대학부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돌고 돌아 정연이의 차례가 되었다. 수줍은 목소리로 그림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듣고 감탄을 가장 크게 한 게 아마 나이지 않았을까.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그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저는 오래전부터 동경해 왔었으니.


정해진 답이 없는 상태에서 끝없는 해석과 탐구가 요구되는 분야. 아름다운 것을 좇고 사랑하는 분야.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분야. 글과 음악, 그림 등은 내게 늘 그런 분야로 비쳤다. 비록 학생 신분이었지만 그런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정연이가 그리는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궁금해졌다.



그로부터 4-5년 후, 처음으로 정연이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꽃다발에 시집 한 권 넣어 버스에 오르던 아침이었. 정연이의 졸업 전시장을 찾았다. 두 손바닥 크기의 그림, 캔버스 째로 천장에 매달아 놓은 그림, 여행지에서 봤던 풍경을 담은 그림 등... 정연이에게 허락된 디귿 모양의 전시 공간이 참 아늑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고 생각도 했다. 오래 붙들던 생각을 눈에 보이는 걸로 만들어 하나의 공간을 형성할 수 있으니깐. 공간엔 응당 분위기가 조성되기 마련이니. 그 분위기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내뿜는 호흡처럼 고유하게 느껴졌.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대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전시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블로그에 글을 남겼. 친구의 전시에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위에 적었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하고도 싶었다. 그땐 몰랐다. 정연이의 졸업 전시장을 걷고, 집에 돌아와 블로그에 전시 후기를 남기는 게 지음지기의 초석이 될 줄은.



독립출판 팀 지음지기의 정체성은 그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글과 그림의 대화라는 데 있다. 그 대화 중에는 글을 읽고 그려진 그림이나 그림을 보고 쓰인 글처럼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경우도 있었고, 글과 그림이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더라도 그 마지막 모습은 각기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동화(같아짐)와 분화(나눠짐)라고 할까?


지음지기의 쓰는 사람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배웠다. 글과 그림은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는 것을.


관련하여 정연이는 자주 말했다. 그림 작업에 중요한 것은 직관이라고. 그 직관을 구현시키는 작업, 일종의 구상이 깊고도 넓어서 시간이 종종 오래 걸린다고. 대신 구상이 완성된 이후의 작업은 의외로 단순 노동일 때가 많다고 했다. 갖은 화구를 활용하여 캔버스를 채우는 것, 설계를 믿고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글 쓰는 사람의 입장도 덧붙이고 싶어 졌다. 이렇게 정리해 말했다. 그림 작업의 초반부에 필요한 직관이 글 작업의 경우에는 퇴고라는 후반부에 집중되는 것 같다고. 글은 고민만으로는 절대 시작할 수 없다. 오히려 일단 뭐라도 쓰면서 보이지 않는 힘, 이른바 문장의 가속도라 부르는 추진력을 받는 게 중요하. 플롯 구성이나 개요 등, 약간의 설계가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글쓴이가 쓰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일단 펜을 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게 중요다(시작이 반입니다 정말). 그렇게 와다다다 완성한 글을 끊임없이 고치면 그제야 비로소 조금은 용기가 생긴다고, 완벽하진 않지만 마침표를 찍을 순 있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고.


마음이 통하는 벗으로 묶였지만, 그리는 사람 정연의 시선과 쓰는 사람 주현의 시선은 확실히 다르거든요. 재미난 점은 같은 주제에서 뻗어나간 그림과 글의 다름이 또 제 나름대로는 연결고리를 형성한다는 겁니다. 너와 나의 개별성도 결국엔 사람 사는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었거든요. 호흡하며 고민하고 표현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 그 사람이 표현해 낸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너와 나의 니은> 중에서


이토록 다른 매체, 글과 그림을 사랑한 두 사람이 한 팀을 꾸리다니! 무모하다면 무모하겠지만 그 표현을 돌려 표현하련다. 도전적이라고. 어찌 되었건 제가 속한 팀이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깐. 정말 열심히 작업하고 있으니까, 우리.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꾸준히 붙들고 있는 건 힘들 수 있다. 좋아하는 만큼 욕심이 나고, 욕심이 절로 힘을 키워서 좋아하는 마음이 있던 자리에 조바심을 갖다 놓는다. 초심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기 쉽게끔. 때문에 팀을 꾸리자마자 가장 먼저 아카이빙부터 했다. 그간 정연이와 제가 친구로서 함께 주고받았던 글과 그림의 편지를 한 데 모아보는 작업이었. 창작 동료가 될 줄 몰랐던 시절에 쌓았던 전시와 전시 후기글들. 의도치 않은 초심을 모았다. 작다면 작고, 적다면 적은 그 대화의 흔적들이 지음지기의 시작이 되었다.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지음지기(@drawnnwrittenby) 포트폴리오

그리는 사람 최정연 │쓰는 사람 전주현






keyword
이전 01화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