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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Oct 16. 2019

가끔 내가 싫을 때가 있다

두 자아가 마주할 때면

가끔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1. 외향적인 나와 내향적인 나


어느 모임에 가도 듣는 말이 있다. "어딜 가나 항상 사랑받을 거예요!" 언제나 유쾌한 인상을 남긴다. 분위기를 띄우는 건 내 몫이다. 물론, 나 역시 그로 인해 모임의 텐션이 올라가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일까. 말하고 싶어지지 않을 때가 찾아오면, 스스로 먼저 당황한다. 특히나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면 더욱. 난 언제나 재미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를 느끼면 불안해진다.



 외향적인 사람 같지만 내향적일 때가 있어. 가끔.



아무하고도 얘기하기 싫을 때가 찾아오곤 한다. 비단 우울해서가 아니다. 그냥 갑자기, 그럴 때가 있다. 무대가 있으면 희열에 가득차 밤새 떠들 수 있지만, 반대로 판이 깔리지 않으면 그닥 얘기하고 싶지 않다. 시원하게 한바탕 놀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외향적인 사람들은 노는 데서 에너지를 채운다고 하지만, 반대다. 한 번 만나면 온 에너지를 쏟아 외향성을 드러내고 당분간 쉬면서 충전한다. 그런데 약속이 잡히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없는 힘 짜내서 만나고 오면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왜 늘 재밌지 못할까. 텐션이 내맘대로 조절이 안될까.


2. 이상을 다가가는 나와 현실에 붙으려는 나


이상이 크다. 어렸을 적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피디와 디자이너, 엔지니어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전혀 뜬금없는 직업의 나열이지만, 난 이 셋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피디는 영상으로, 디자이너는 브랜드로, 엔지니어는 기술로.


그와 달리, 당장 오늘 먹고 사는 게 불안하고 내일이 걱정인 내가 있다. 누구는 "네가? 대체 왜?"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순탄히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박차려는 이상 때문에 현실이 걱정이다.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살겠다는 그 바람을 지키기에 세상은 냉혹하다. 어쩌겠나. 꿈을 가져가면서도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안전망을 만들고자 현실의 나는 고군분투한다.


가끔은 그 발버둥이 지나쳐서 순간에 매몰될 때가 있다. 지금 위치에서 갈 수 있는 좋은 직장이 어딘지 찾아본다거나, 주위에서 누가 취업을 했다고 하면 마음이 흔들린다거나. 그게 심해질 때면 다른 길이 더 좋아보이기도 한다. 큰 기업이 아니고서 자생하기 힘든 학문인 재료공학을 불평하며 "소프트웨어를 할 걸 그랬나...", "다른 길은 없을까..." 하며 고민하기도 한다.



두 자아가 있다. 확신에 가득 찬 나와 늘 불안에 떠는 나. 그런데 가만 보고 있자니, 그 둘 다 내 자신이다. 어떻게 사람이 칼로 자르듯 딱, 나뉠 수 있을까. 가끔 내향적이면 어떤가. 현실이 시궁창이라 불안해하면 어떤가. 그게 나인데.


사람을 소개할 때 가장 좋은 말은 딱 하나다. "걔는 그냥 걔야."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건 그 자체로 한계를 만들어 버린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신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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