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도 이상한 사람이 없었던 기적 같은 만남의 기록.
2024년 1월, 영국에 도착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약속 장소인 작은 카페 앞에 서 있었다.
겨울바람은 얼굴을 날카롭게 스쳤고, 차가운 습한 공기는 얼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까지 얼려버릴 듯했다.
정말 들어가도 될까?
가볍게 두드리면 열릴 문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엉켜 지나갔다.
혹시 내가 너무 평범해 보여 실망하면 어떡하지? 내가 혹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사실, 낯선 땅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내게 작은 도전이었다.
가족도, 오래된 친구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자 마음먹은 건 어쩌면 마지막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심장을 쿵쿵 두드렸다.
나는 심호흡을 길게 내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도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늘이잖아.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원두 향이 코끝을 감쌌다.
나는 약속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뜻한 커피를 시켜놓고, 괜히 메뉴판을 몇 번이고 뒤적이며 애써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손끝은 괜히 바쁘게 움직였고, 눈은 시계만 자꾸 흘끔거렸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올까? 내가 너무 어색하면 어떡하지?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리더니 환한 미소의 한 언니가 들어왔다.
나를 보자 가볍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혹시 혜원 씨 맞으시죠? 아, 드디어 뵙네요!"
그 말 한마디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곧이어 또 다른 언니가, 또 다른 언니가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자리에 모였을 때, 카페 안 공기는 이미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오늘 우리는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이렇게 어색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
첫 번째 혜진언니는 세계 굵직한 글로벌 기업의 임원.
처음 본 순간부터 아우라가 달랐다.
말 한마디를 해도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려 퍼지는데, 그 안에 자신감과 확신이 가득했다.
커리어우먼 특유의 똑 부러짐이 몸에 배어 있었고, 앉아만 있어도 "아, 이 모임은 언니가 이끌어 가겠구나."싶은 기운이 느껴졌다. 게다가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는데,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싶었다.
그냥 언니의 존재 자체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원심력 같았다.
두 번째 지원 언니는 무역업을 수년 째 하고 있는 반전의 아이콘.
모델 같은 키와 세련된 외모 덕분에 처음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런데 입을 열자마자 흘러나온 구수한 사투리.
화려한 외모 속에 숨어 있던 소탈한 매력이 단숨에 드러났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모두를 매료시켰다.
특히 남편 이야기를 할 때면 눈빛이 소녀처럼 반짝였는데, 그 행복한 기운이 언니의 매력을 한층 더 빛나게 했다.
세 번째 예진언니는 차분하고 단아한 첫인상을 주었다.
첫 모습을 보고 바로 떠오른 여자 연예인 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문채원 씨였다.
대화를 나눌수록 승무원 DNA가 확실히 느껴졌다. 따뜻하고 차분한 목소리,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말투.
한마디만 해도 상대방 마음을 편안헤게 풀어주는 힘이 있었다. 서울깍쟁이 같은 세련미가 살짝 비치지만, 그게 또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첫날부터 "아, 이 언니는 정말 세심하구나" 싶었는데, 옆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대고 싶을 것 같은 안정감이 있었다.
네 번째 현주언니는 교육자.
언뜻 보면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세련된 옷차림으로 인해 쉽게 마음을 열기도, 친해지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완전히 다른 매력이 드러났다. 밝고 통통 튀는 목소리, 유머러스한 말투, 그리고 솔직한 성격. 그 안에서 묻어 나오는 따뜻함 덕분에, 어느새 모두가 언니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냥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환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섯 번째 미숙언니는 엘리트 전업주부.
첫인상은 차분하고 단단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말투는 조곤조곤했고, 행동하나에도 오래 쌓인 내공이 느껴졌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진지해졌고, 생활 속 지혜와 경험은 적은 팁 하나마저도 보석처럼 빛났다.
음식 솜씨도 뛰어나서 다들 언니의 집밥을 기다렸는데 그래서일까. 언니를 보면 늘 '따뜻한 친정엄마'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섯 번째 수연언니는 조금 달랐다.
겉으로는 수줍고 환하게 웃었지만, 그 속에는 쉽게 지울 수 없는 고단함이 숨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엘리트교육을 받고 수석 연구원으로 누구보다 빛나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모든 것을 접어두고
영국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와 독박육아로 아이 둘을 키우며 고립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쩐지 언니의 그 마음이 내 심정과 겹치면서 언니의 묵직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와닿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여전히 꿋꿋하게 아이들 곁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언니의 웃음 속에는 씩씩함과 외로움이 동시에 공존했는데,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민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인 우리는 커피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이고 웃고 떠들었다.
한국에서 먹던 음식 이야기, 영국 행정의 답답함, 아이들 교육문제, 한국 드라마까지.
주제는 끝없이 흘러갔고, 그만큼 웃음과 공감도 끊이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이렇게 같은 언어로 마음을 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내 생일이 다가왔을 때 가족도 없이 조용히 지나가겠거니 했는데,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푸짐한 음식과
서프라이즈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내 생일상을 차려준 건 다름 아닌 언니들이었다.
그날의 따뜻함과 웃음소리는 아마 평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남편의 한국지사 복귀로, 또 누군가는 아이의 진학 문제로, 각자의 길을 따라야 했다.
1년 남짓 함께한 시간이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정이 붙은 만큼 이별은 늘 갑작스럽고 아쉬웠다.
헤어짐의 순간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거듭되는 이별에도 쉬이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번 아팠고 매번 슬펐고 매번 아쉬웠다.
이민자의 삶은 늘 이동과 변화를 품고 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았다.
남은 이보다 떠나는 이의 마음이 더 무거울 것을 알기에.....
영국으로 오면서 나는 늘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포기한 것도, 놓아버린 것도 많았다.
하지만 언니들을 만난 순간부터 내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많은 걸 잃었어도, 나는 이 분들을 얻었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이로는 막내였지만, '방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를 세워주고, 주인공처럼 만들어주던 언니들.
내가 지쳐 있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한걸음에 달려와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던 언니들.
나는 무슨 복이 있어서 이토록 많은 보석 같은 인연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을까.
아직도 기적처럼 느껴진다.
행복이 길어지면 오히려 이 행복이 한순간 사라질까 불안해하듯,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보석들을 얻은 것이 혹시나 잃어버릴까 두려운 날도 있다.
내 기적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단 한 명도 이상한 사람 없이 모두 다 나에게 과분할 만큼 좋은 분들만 모였는지....
지금도 가끔은 믿기지가 않아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영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이 모임을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과 삶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영국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결국 이민의 길 위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