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이곳.
2025년 12월 15일.
우리는 드디어 이사를 하기로 예정되었던 날.
한 달, 두 달 전부터 달력에 표시된 이날만 보며 살아왔던 몇 달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날짜 하나를 기준으로 모든 일정이 정리돼 있었다.
인터넷 이전, 연수기 설치, 가구 배송까지.
이사는 그저 마지막 퍼즐 조각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
우리는 설렘과 기대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사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의 우리에게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사업체는 원래 오전 7시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날 밤,
원래는 우리 동네에 위치한 이사 업체지만 전날 이사 건으로 런던에서 출발을 해야 해서
7시가 아닌 9시쯤 도착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괜찮았다.
이 정도는 예상 범위였다.
그런데 9시 30분이 지나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조급해진 마음에 전화를 걸자 익숙한 대답이 들려왔다.
''출퇴근 시간이라 길이 많이 막혀요.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그렇지.
출퇴근 시간은 항상 막히는 법이지.
그래도 좋은 날이잖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이사업체에서 갑자기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조금만 손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싸했다.
화면 속에는
차량 아래를 비추는 카메라와 고장 난 부분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2시간이 지났을 때 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차량 결함 때문에 오늘은 도저히 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미 시간은 오후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사과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본인들도 너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오늘 안에 무조건 차를 고치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바로 출발해서
오후 3시 이전에 모든 이사를 끝내주겠다고,
이사비도 반만 받겠다고. (다행히 우리는 이사비를 보증금만 내놓은 상태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그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이상했다.
분명 어딘가 거짓말 같았다.
사람의 촉이라는 게 발동되면 거의 90프로는 맞다.
더욱이나 안 좋은 상황에서는.
그런데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들의 말을 믿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고,
지금 당장 새로운 업체를 구한다는 건
영국에서는 기적과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동아줄은 지금 이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고,
평점도 나쁘지 않았고,
정말로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믿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우리는 초조하게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7시.
''미안하지만 차가 고쳐지지 않아서 오늘 못 갈 것 같아요."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편은 휴대폰을 집어던졌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어쩌면 알고 있었던 결말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아니에요, 지금 갈게요."라는 말이
늦게라도 오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깐 한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게 사기구나.
보증금을 떼어먹으려고 이런 수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구나.
우리는 사기를 당했구나.
그날 우리는 선택지가 없었다.
모든 스케줄 때문에 당일 이사는 해야 했고,
짐은 이미 싸여 있었고,
미룰 여유도 없었다.
부랴부랴 다른 업체를 찾았다.
가격은 처음 계약했던 금액의 두 배였다.
비싸다고 느낄 틈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오늘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극적으로 새로 구한 이사업체의 차량이
집 앞에 섰을 때, 그제야 숨이 내려갔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숨을 참고 있었는지 그때 알았다.
우리는 원래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돈을 더 주고 '포장이사'를 선택했다.
한국에서의 그 포장이사.
짐은 사진을 찍어 놓은 것 마냥 제자리를 찾고,
박스는 사라지고, 부엌은 원래 내가 정리한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정리돼 있는.
그 그림을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말하는 포장이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과는 달랐다.
큰 가구 몇 개를 옮기고, 침대를 조립해 주고,
박스는 모조리 집 안에 욱여넣어두고 가는 것.
그게 전부였다.
이사팀이 떠난 뒤,
거실에는 정리되지 않은 박스들이 마치 ''이제부터 네 일''이라고 말하든 쌓여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했던 당일 우당탕탕 이사를 끝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짐을 정리하고 있다.
끝난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은 상태로.
가끔은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육체적으로 고생하면 어쨌든 해결은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을 이미 3년 차가 된 지금도
드문드문 겪을 겪을 때면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이제 그 '집'이라는 곳은
영국의 어느 변두리, 작은 마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우리 집이 될 것이다.
이곳에 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 미래를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지금도 우리는 둘 다 39도를 웃도는 열로 응급실을 오가며 버티고 있다.
약기운에 낮과 밤도 헷갈리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이제는 '남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새해 액땜을 제대로 해버린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는 조금 더 부드러운 무탈한 날들이 오기를 바라며.
잘 부탁해.
그리고 반가워,
내 새집아.
PS, 남편의 끈질긴 싸움으로 사기를 친 이사업체에게는 보증금을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