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잘 풀릴 때가 가장 불안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by Stella

2025년 12월 15일.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오래 기억에 남을 날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날이다.


내 생에 처음으로, 자가로 이사를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부터 내 집 하나 가져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빈번히 엇나갔고,

결국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우리는 영국으로 이민을 와버렸다.


한국에서의 자가 마련을 코앞에 두고서 말이다.


이미 초기 1,2년은 늘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왜 왔을까.'

'그냥 한국에 남아 내 집에서 편하게 살 걸.'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러다 또 어떤 날은

'아니야, 잘 왔어. 이걸 보려고 여기 온 거잖아.'

같은 생각이 수백 번도 넘게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2년 반이 흘렀고,

우리는 월세살이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가져온 돈도, 벌고 있는 돈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다음 달을, 내년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내일이 걱정되고, 한 달 뒤가 걱정이고, 내년이 막막했다.

그 걱정이 매일 같이 이어지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닳아갔다.


결단이 필요했다.

영국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사실 마음만 보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돈, 시간을 태워버린 뒤였다.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영주권이라는 목표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월세살이를 끝내는 것이었다.


남편 연봉의 N배를 대출받고,

한국에 있던 돈과 주머니 속 돈을 탈탈 털어

우리는 영국에서 자가를 구입했다.


운 좋게도 꽤 마음에 드는 동네였고,

새로 짓는 집이었다.

걱정보다 설렘이 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어느새 여섯 달이 흘렀고

드디어 집이 완공되었다.


우리는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비록 새집이지만,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을 풀어내고 싶었다.

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페인트를 고르고,

액자를 걸 자리를 정하고,

가구 배치를 상상했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카펫이 아닌 우드 플로어였다.

청소기를 밀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은,

그 '나무 바닥'.


아늑한 색의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을 깔며

우리는 조금씩 이 집에 마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영국에서 집 사는 건 정말 쉽지 않다고.

자금 출처 증명부터 시작해서

완공 날짜가 몇 달씩 밀리는 건 기본이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에게는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로웠다.


예정일보다 조금 이른 12월 초,

집은 완공되었고

페인트와 바닥 공사도 단 한 번의 딜레이 없이 끝났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아무래도 새집 기운이 좋은가 봐."

"이제 우리 고생 끝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드디어

키를 받고,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남은 건 단 하나.


이사.


영국은 인건비가 악명 높다.

하지만 저질 체력인 우리 둘이서

이사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포장이사를 선택했고,

여러 업체의 견적을 받아

가장 합리적이고 리뷰가 좋은 곳으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너무 아무 일 없이 흘러왔기에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그래서 이사 전날까지도

스케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사 당일 차임이 밝았다.


그날의 날씨를 잊을 수가 없다.

며칠 내내 비가 오던 하늘은

그날만큼은 거짓말처럼 맑았고,

차가웠던 공기도 푹해졌다.


'하늘도 우리 이사를 도와주나 보다.'


이삿짐 차량이 도착하기로 한 시간은 오전 7시.

몸도 오늘을 기억하는지

6시쯤 눈이 번쩍 떠졌다.


이불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짐을 점검하던 중

건너편 방에서 짐을 정리하던 남편의 입에서

짧은 욕설이 섞인 소리가 들렸다.


원래 욕이나 비속어를 쓰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비속어는

훨씬 더 칼날 같이 귀에 꽂힌다.


그 순간,

마무리 짐을 싸고 있던 내손은 얼듯이 멈췄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올 것이 왔구나.'

그동안 너무 술술 풀려왔던 일들이

이제 한꺼번에 꼬이기 시작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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