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깊은 곳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를 위해 무엇이 필요했던 것일까? 돈? 명예? 시간? 친구? 각자의 인생 속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다면 아마도 ‘시간’이라는 것도 필요하고 ‘돈’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할 테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에 막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 즉, ‘정답*은 없다’이다.
*정답 正答; 옳은 답.
아무리 많은 대기업 CEO,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 유명인 등을 따라 한다고 하여도 그들만의 그리고 우리만의 특별한 무엇은 아주 극소의 차이로 다르다. 보기엔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다고 할 순 없다. 닮은 듯 다른 우리는 모두 지금 그렇게 각자의 빛을 갖고서 더 뚜렷하면서 좀 더 자신만의 색채를 묘사하고 그려 나가기 위해 앞으로 발을 내딛는 중이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공기나 주변 환경 속에서 또 다른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고, 색다른 광채를 띄는 무엇인가 발견하여 기쁨에 젖어들 수도 있다. 인간이라서 그런지 계속 반복되는 일상이나 습관은 너무도 지루하기 그지없다. 출근하거나 일하는 것, 공부 활동 및 운동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기 편할지 모르지만 계속 되풀이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는 이미 Hell Zone(지옥)과 같은 어두운 부분이 펼쳐지기 시작함을 느낄 때도 있다.
이렇게 마음속에서도 좋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있듯이, 살아가는 우리 세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더라. 우리가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했을 뿐, 사회나 인생의 실체가 그렇게도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작은 발견이나 실천을 통하여 이뤄보지 못했던 경험으로 ‘나다움’을 인지할 수 있고 굳이 정해놓지 않아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가끔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미리 실행 내용을 적어 놓거나 습관을 만들기 위하여 프로젝트를 시행할 때도 있다. 그러나 또다시 무기력해지는 마음과 몸에 따라서 반복하는 습성을 몸에 배게 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것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순간도 경험하게 된다.
한 찰나에 힘겹게 공들여 놓은 것들이 다시 내려앉을 뿐이지 내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은 아니었고, 다시 넘어진 공든 탑을 주섬주섬 일으켜 세우면 그만이다. 본래의 위치로 옮겨 놓는 것도 하나의 실력이 되고 들어 올리는 힘도 예전보다 훨씬 월등해져서 자신도 모르는 기력이 샘솟아 나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나에게 다가가기가 이렇게 쉬웠나?’ 할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부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와 만나기 위하여 그 문 앞으로 다가서기만 해도, 손만 뻗으면 와닿을 곳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짐작할 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르던 사람과 잠시 스쳐 지나가더라도 나와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생성될 가능성이 있는데, 왜 나와 나 자신이 연결될 수 없겠는가? 나라는 사람이 나로 인해 이끌리는데, 그 주동자가 힘이 없거나 기력이 약해져 있으면 어떻게 나를 잘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내 속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갈 것인가? 아니면 한 번이라도 다시 들여다보고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은가? 처음엔 어두컴컴해서 보이지도 않으니 ‘에이~ 별것 없네’ 하면서 다시 그냥 가던 길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손전등이나 촛불이라도 켜보려 애쓰거나 사뿐히 한 발자국이라도 그 어두운 부분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조금 더 상세히 저 깊은 내막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백이 있을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내 마음 깊은 곳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성공이든 가능성이든 뭐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 위해선 나와 함께 갈 줄 알아야 한다. 한 번 놓치고 나면 다시 잡을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 또 공을 들여야 하니 말이다. 이미 그렇게 몸에 익숙해져 나와 함께 잘 가고 있다면 그냥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걸어가자. 눈치 볼 것도 없고 남 의식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대하지 말자. 다시는 못 만날 고귀한 지금, 이 순간을 말이다.
‘오늘’에 대하여 강한 의미를 부여잡아보면, 어제 누군가는 오늘도 살고 싶었을 테지만 사정에 따른 고통이나 아픔 때문에 견디지 못한 채 그냥 돌아가 버리신 분들도 계신다. 나만 잘살자고 부둥켜 잡고 있던 인내심이 아니라 내 자식, 내 가족, 내 지인들과 더 함께하고 싶고, 남겨두고 가려니 걱정되니까 하루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떠나가기 싫으셨을지도 모를, 바로 그 ‘오늘*’이다.
*오늘; 지금 지나고 있는 이날.
잃어버린 만큼 성숙하는 마음의 섭리에 따라 만약 과거나 어제까지 많은 것을 놓치고 후회하면서 살아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마음속을 샅샅이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버려야 할 것은 산뜻하게 비우고 오자. 비우고 나면 그 넓었던 마음의 본모습이 등장할 테고 다시 꼭 필요한 것만 차분히 채워 넣으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급히 채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어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이다. ‘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비우는 일’ 일테니.
나를 위해 그런 수고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한 번 더 살펴봐 주는 게 나를 위한 배려인데 말이다. 손 한 번 잡는 것도 어려웠을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나를 더 편안하고 홀가분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달라졌으니, 행복에 빠진 내 마음은 오죽할까?
거기다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가는 순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조금은 이상하거나 믿기지 않겠지만, 진정으로 이뤄지고 있는 그 순간순간이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나에게 원망하던 시간은 이제 다 필요 없고, 이제 나를 격려하고 사랑만 전해주면 된다. 그게 나를 위한 길이니.
예전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걱정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누군가의 조언이나 보살핌으로 꾸깃꾸깃 채워 넣기만 하고선, 그 넘쳐나는 타인의 배려의 향기로움에 도취하여 내 형체조차 제대로 보이지도, 보지도 못했다. 안갯속에 숨겨져 있던 나를 꺼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감추고 의지하려 들더니, 그때 서야 내 모든 부분은 흐리멍덩하게 변하여 보이지도 않은 채 그 윤곽조차 잃어버렸다.
지금까지의 많은 일은 모두 나로 인해 선택되고 시작되었다.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빙의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된다면 나 자신에게 의리도 없는 내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 ‘자신과의 신의’를 제일 우선시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과도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 계속 무엇인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면서 ‘신뢰’라는 명분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너지기만 했다면 거기에 따른 분명한 이유는 내 안에 있을 것이고, 그 실수들이 반복되는 것에 대하여 조금은 의아해 보면서 나와 같이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토의를 시작해 보는 거다. 다방면의 문제나 상황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해 보자. 그러고 나면 그 문제점에 대한 보안을 위해 여러 가지 방책이나 해결책이 분명히 나타날 것으로 보이게 된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이제 모두 던져버리고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하자. 나를 가라앉히거나 무리를 요구하는 등 나를 힘들게 하는 일에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진중히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왜 어렵고 두렵기만 했던 일을 그렇게 힘들게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냉정하게 자신을 스스로 직접 판단해 보면서 고칠 부분은 수리해 보는 거다.
순조롭지 않은 일이라도 모두 안 좋은 것이 아니니, 그 힘겨운 일에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조금은 여유롭게 받아들일 준비를 해보자는 이야기다.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바르지 못하거나 마음의 문을 깨끗이 닦아 놓지 않으면 들어오려는 행복이나 좋은 기회도 들어올 문이 보이지도 열려 있지도 않아서,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삶은 녹록지 않다. 당신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가기도 힘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지금을 우리는 살고 있다. 잘 살아가는 것도 내 인생을 위한 것이고 정답은 없더라도 이렇게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다. 내 속에 숨 쉬고 있던 나를 깨우고 일어나서 나만의 향기를 다부지고 기품 있게 뿜어내보자. 어떤 향기가 되었든 내 것이기에 소중하다. 그러니 그 소중한 것을 끌어안고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