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인연을 쓰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흔들리는 순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난 할 수 있어. 난 잘 해낼 거야. 나는 현명하니까 다 이겨낼 수 있어."
처음엔 그것이 단순한 자기 암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목소리는 바로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우리 딸은 잘할 거야."
"나는 우리 딸은 걱정도 안 해."
"쟤는 어디다 내놔도 헤쳐 나갈 아이야."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내 삶을 붙잡아 준 든든한 뿌리였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목소리가 선명하다.
마치 내 귀에 속삭이는 듯 들려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흔들릴 때마다 내 등을 떠밀어주고, 넘어지려 할 때마다 붙잡아 주는 힘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넌 자존감이 참 높아 보여."
당시엔 왜 그런 말을 듣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나의 의지나 성격만이 아니었다. 부모가 내게 심어준 믿음 덕분이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남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해 속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부모는 언제나 말했다.
"괜찮다. 넌 잘할 거다. 걱정할 게 없다."
그 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값진 유산이었다. 재산은 남겨주지 못했을지 몰라도, 부모가 내 마음속에 남겨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강력한 자산이었다.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힘,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용기였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가난했던 시절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향해 믿음을 거두지 않았던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 감사함으로 눈물이 난다. 부모의 믿음이란, 결국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
내 아이의 마음속에도 같은 뿌리를 심어주고 싶다.
아이에게 늘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넌 이미 충분히 괜찮은 아이야."
"너는 잘할 거야. 네 안에는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힘이 이미 있어."
언젠가 아이가 세상과 홀로 맞서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말들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목소리로 살아 움직였으면 한다. 흔들리는 순간, 그 목소리가 아이를 붙잡아 다시 일으켜 세워주기를 바란다.
나는 부모의 믿음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아이의 첫 번째 믿음이 되고 싶다.
아이의 마음에 평생을 지켜주는 목소리 하나를 남겨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라 믿는다.
오늘도 다짐한다.
나는 아이의 든든한 믿음이 되어주리라.
그 믿음이 아이의 평생을 지켜줄 수 있도록.
Epilogue.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연을 쓰다>는 부족하지만 저의 세 번째 브런치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제 글은 사소한 일상의 기록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조각들을 모으는 동안,
나는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던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렸고,
그리움과 감사, 사랑과 배움을 다시 제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리고, 잊혔던 마음의 온기를 불러낸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쓴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의 글노트에는 여전히 이야기가 쌓여갈 것입니다.
때로는 엄마로서, 때로는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적어내며
계속 또 다른 인연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이 잠시라도 독자님의 하루에 따뜻한 쉼이 되기를,
그리고 오래도록 '인연'이라는 이름의 작은 빛으로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기록하는 여자로, 글을 쓰는 길 위에 서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