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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Chu Dec 27. 2018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향취

알제리 첫인상 편

어른이 되면 거기에 가리라.

사막을 건너는 낙타 대상과 함께.

먼지로 뒤덮인 식당의

어둠에 불을 밝히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리라.

영웅들, 전투장면들, 축제들.

한 구석에서 옛 이집트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찾으리라.

   -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여행> 중      


열흘 동안 알제리에 다녀왔다. 그곳을 다 다녀본 것도 아니고, 가장 큰 기대를 품었던 사하라 사막에도 끝내 못 갔지만, 그곳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소란스러운 시장과 카페, 숨어 있는 영웅들, 축제들, 큰 눈망울의 아이들... 기록하고 나누지 않으면 여행은 끝나지 않는 것. 이제 미지의 나라 알제리에서 내가 본 것을 정리할 시간이다.    

   

출발, 보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  

      

알제리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 덕분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그는 유머가 풍부하고 호방하여 주변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그런 사람이다. 오랜 시간 나같이 팍팍하고 까칠한 인간을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이 친구의 인덕을 증명한다고나 할까. 그가 어느 날 내게 알제리에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한 달 후 알제리에서 문화행사를 연출하게 되었는데, 공연을 같이 진행하고 일이 끝난 후 며칠 동안 여행을 하자고 했다. 

“갈텨?” “좋지!”

아, 아프리카가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오다니... 머리와 가슴이 후끈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가기로 맘먹자마자 미지의 나라 알제리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전 국토가 여행금지 혹은 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곳에 다녀온 여행자는 극히 드물었고, 제대로 된 여행기나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북아프리카지중해, 알제리 전투와 카뮈, 사회주의와 이슬람, 낯선 이름의 도시들과 사하라 사막... 등 한 달 내내 여기저기 흩뿌려진 정보의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으며 그곳의 공기를 짐작해보려 애썼으나, 여행, 안전, 언어, 종교, 인종... 단 한 가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짙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새벽 1시 알제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험 직전까지 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국내 유일의 알제리여행기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2006. 마음산책)을 펼쳐들었다. 평생 카뮈의 작품을 번역해 온 저자가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 작가 카뮈의 자취를 찾아다닌 기록으로, 카뮈의 주옥같은 문장과 저자의 뜨거운 감회가 하나로 녹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기를 읽고 있자니 묘한 반감이 일었다. 카뮈가 아무리 알제리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이렇게 프랑스 작가의 시선으로 알제리를 들여다봐야만 하는 걸까? 이것은 일본의 유명한 작가를 따라 식민지 시절의 조선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닌가? 지금의 알제리가 과연 그렇게 낭만적이기만 한 곳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삐딱한 시선으로 책장을 넘기던 중 카뮈의 문장 하나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신 따위는 나중에도 자유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있다. 

본다는 것.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 이 교훈을 어찌 잊겠는가?“   

                              -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중     


나는 즉시 카뮈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머리를 비우고 겸손해져야 할 때였던 것이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보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은 없다.’는 주문을 계속 외자 잠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비행기는 쉼 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가고 있었다.   

  

아잔에 물든 알제   


총 17시간의 비행 끝에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 도착했다. 불어로 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느라 진땀을 빼야했고, 꽤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야 수화물이 나왔다. 시차는 8시간. 공항 밖으로 나오자 시차만큼이나 낯선 풍경 위로 정오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 창문을 열었다. 호텔 앞 저택 너머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어딜 가나 휴양지 분위기가 나는 유럽의 지중해와는 달리 알제의 지중해는 일상적인 항구 분위기였다. 한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 현대식 고층건물 하나 없고,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그것이 가난하기 때문인지, 완고하기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항구에서 이어진 완만한 산등성이를 높지 않은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들이 덮고 있고, 도시 중간 중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장식물처럼 이슬람 사원들이 놓여있었다. 위성안테나와 빨래가 빼곡하게 걸려 있는 아파트들, 언덕 위 커다란 호텔과 저택들, 언덕 꼭대기의 충혼탑...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에서 바라 본 알제 전경

북쪽으로 열린 바다가 낯설었다. 창문이 북쪽으로 나 있어서 한낮인데도 방안이 어둑했다. 바다와 햇빛을 동시에 가질 수 없는 창문, 밝은 풍경과 서늘한 공기의 충돌. 그 위로 그들의 역사가 묘하게 겹쳐졌다. 알제리 쪽에서 보면 로마시대로부터 프랑스식민지 시절을 거쳐 오늘날까지 바다로부터는 항상 반갑지 않은 정복자들이 들어왔다. 저 수평선을 넘어 해변에 도착한 낯선 배에게 그들은 “당신들은 누구요? 어디서 왔소?” 하고 의심에 찬 눈초리로 물었을 것이고, 이방인들은 정체를 밝히자마자 복종을 강요했을 것이다. 그 유구한 긴장감 때문일까? 알제는 돌아앉은 채 고개만 돌려 유럽대륙을 노려보고 있는 암사자 같이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며 여러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모스크 첨탑의 확성기에서 아잔(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녁 기도였다. 잠시 후 또 다른 모스크에서 동시다발로 아잔이 시작되었다. 가늘고 고운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거칠고 낮은 음성도 들려왔다. 멀리 있는 모스크의 아잔은 아련하게, 가까운 모스크의 아잔은 귀에 대고 확성기를 튼 것처럼 고압적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여러 가지 바람이 한꺼번에 어지럽게 불어오듯 다양한 음성이 각자의 물결대로 출렁이며 대기를 채웠다.    

     

주문의 효과는 컸다. 아잔소리에 대기가 크게 출렁이자 도시전체가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유럽을 향해 당당하게 돌아앉는 것 같았다. 소리가 풍경을 뒤바꾸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작한 아잔은 5분 남짓 온 도시를 물들이다 갑자기 뚝 끊어졌다. 다시 낮은 소음의 적막이 찾아왔지만 도시에는 이미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종교적 향취가 배어있었다. 돌아앉은 암사자 같던 순결한 첫인상은 짧은 순간 완전히 사라졌고, 이슬람의 향취는 서서히 휘발되기는커녕 점점 더 진해져만 갔다.    

 

이윽고 해가 저문 반대편으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향취에 온몸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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