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5코스 - 킨텍스 길
5코스가 나하고 안 맞을 거라는 예감은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개인적으로 평화누리길의 핵심 포인트는 이야기와 경관이 아닐까 한다. 조강, 한강, 임진강, 한탄강을 낀 경기 북부의 경관을 따라 분단의 역사를 돌아보고, 평화로운 앞날을 기원하는 도보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화누리길의 취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5코스를 걷는 내내 화가 났다. 하여 평화누리길 여행자 자격으로 5코스를 만든 공무원들을 향해 불만을 늘어놓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 보려 한다.
5코스는 일산 호수공원에서 파주와의 접경인 동패지하차도까지의 약 9km의 길로 13개의 누리길 중 가장 짧은 코스이다. 거리가 짧아 6코스인 ‘출판단지 길’을 붙여 하루에 걸었는데, 실제 걸어본 바로 6코스가 아닌 4코스 ‘행주산성 길’과 붙여 걷는 것이 더 효율적일 뻔했다. 4코스에 비해 6코스가 훨씬 길고 다채롭기 때문에 4,5코스를 붙여 걷고, 6코스를 따로 걷는 것이 더 낫다.
5코스는 일단 이름부터 맘에 안 들었다. ‘킨텍스 길’이라니... 킨텍스와 평화누리길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출발 전부터 아무런 기대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이름이야 기억하기 좋은 것으로 골랐을 수도 있으니 자세한 불평은 패스.
본격적인 불만은 5코스 시작점부터 터졌다. 스탬프 찍는 곳을 호수공원의 가장 구석진 지점, 일명 선인장 전시관 뒤에 만들어 놓은 관계로 도장 하나 찍자고 호수공원을 반 바퀴나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도장을 찍고 나면 다시 공원 뒷길을 빙 돌아 시내 쪽으로 걸어 나오게 되어 있다. 호수공원은 지난번 4코스 끝에서 본 걸로도 충분한데 시작부터 유서도 없고 애정도 없는 드넓은 공원을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돌게 한다. 날은 덥고, 갈 길은 먼데 열이 치솟았다.
공원의 끝 ‘노래하는 분수대’로 나와 이어지는 길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드넓은 광장에서 누리길 출구를 찾아가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렵게 길을 찾아 따라가니 위락시설 뿐이다. 워터파크와 쇼핑몰 뒤편을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 킨텍스 뒤쪽을 돌아나가게 되어 있는데, 일명 가로수길이라는 큰 길을 따라 걸으면 쉽고 빠른 길을 억지로 한 코스를 만들려 길을 꼬아놨다는 인상이 역력했다. 거대한 건물 사이사이로 코스를 만들어 놓다보니 이정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허둥거리게 되기 일쑤고, 경관은커녕 보이느니 주차장과 공사장이다.
덕분에 한화 아쿠아리움 입구도 보고, 사회인야구팀 동생들에게 자주 들었던 원마운트 건물도 직접 보고, 새로 생긴 가로수길 쇼핑몰 단지도 보고, 라디오 광고로 귀 따갑게 들었던 반도 유보라 건설현장도 보고, 현대백화점 주차장도 보고, 킨텍스 주차장도 보고, 고양 스포츠타운도 봤다. 가로수 길로 한 시간이면 갈 길을 이거 보자고 두 시간을 돌아가게 만들어 놓다니... 도장 찍자고 들어갔다 나온 길까지 하면 두 시간 반이나 된다.
그 뿐이 아니다. 킨텍스를 지나 다소 황량한 후반부 길은 이정표나 리본이 드문드문 달려 있고, 방향표시도 불분명해 갈림길마다 한참을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내가 길치인 탓이 크겠지만 몇 번을 갈등하고, 또 몇 번을 갔다가 되돌아 왔는지 모른다. 이정표와 리본 관리도 허술하다. 누리길에는 길을 알려주는 리본을 찾아보기 힘든데, 큰 길가에 올라가보니 지하철 개통을 염원하는 주민들의 리본이 봄날 벚꽃 마냥 달려 있다.
종착지도 불친절하긴 마찬가지. 도착지 '동패지하차도'는 대중교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4차선 터널이다. 터널 위는 6코스의 시작점으로, 파주 심학산 둘레길로 갑작스런 등산을 시작하게 된다. 만일 교통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여기서 끝날 예정이었다면 화가 두배는 더 낫겠다 싶다.
도대체 왜 한 시간 반이면 오는 길을 세 시간 가까이 걸어오게 하고, 교통편 최악의 지점을 종착지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일산과 파주 심학산을 연결하는 길이 오직 이 길 뿐이었을까? 혹시 누리길을 만들 때 일산 담당자와 파주 담당자가 싸우기라도 했던 것일까?
경관도, 이야기도 없는 길을 빙빙 돌며 저간의 사정을 궁금해하다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가 선생님에 했던 그 대사가 떠올랐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영화 속에서 선생님이 완득이를 귀찮게 한 데에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에 대한 속정이라도 있었다지만... 이 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작해줄만한 속정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있는 길을 최대한 복잡하게 이어붙여 놓고는 가장 황량한 곳에 여행자를 버려놓는다.
돌이켜보면 일산이라는 지자체에게 평화누리길은 큰 매력이 없는 사업이었을 듯도 싶다. 일산은 김포와 파주를 위한 누리길 사업을 중간에서 마지못해 이어 주어야 하는 처지였던 것 같고, 거기에 이왕 만드는 거 '행주산성 길' 하나만으로는 허전하니 어떻게든 두 개 구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공무원스러운 욕심이 덧붙여 진 것만 같다. 그리하여 누리길 여행자들이야 어차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일 테니 우리 지역 볼거리, 놀거리를 두루두루 보고나 가게 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은 아닌지...
시야와 소견이 좁은 공무원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길에 오른 나는 생고생을 했다. 그 결과 5구간 '킨텍스 길'은 나에게 평화누리길 전체의 일관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나아가 완주를 향한 여정이 본궤도에 오르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감정의 흐름을 망쳐놓은 민폐구간으로 남았다.
이제 와서 이름을 바꾸거나 코스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 내가 왜 이런 걱정까지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불평을 늘어놓은 죄로 나름 대안을 제안해볼까 한다.
5구간을 A, B로 나누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미 많은 구간이 기존의 둘레길을 연계한 복수의 루트를 제시하고 있는 바, 일산 가로수길로 빠르게 가는 길과 호수공원과 킨텍스 일대를 돌아보는 둘레길을 미리 선택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호수공원 구석의 스탬프 찍는 곳을 호수공원 입구로 옮기고, A,B 코스 안내도를 설치하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는 범위에서의 개선책이지 싶다. 큰 길만 따라가도 전방 일대에서 가장 큰 신도시의 발전상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평화누리길 상에서 일산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5코스를 걷고 나서 느낀 개인적인 소감이다.
“여행자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렇게 되묻는 무책임한 공무원은 없기를.
왜냐, 그 길을 걸으며 내가 느꼈던 분노와는 별개로,
나의 불평에는 평화누리길과 일산에 대한 속정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