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혜숙 Feb 20. 2024

한 판 어때?

라면에 대한 추억



대표

사진 삭제






독일 아마존에서 안성탕면을 주문했다. 하루만에 도착!!!





안성탕면, 한 박스를 시켰다. 라면에 얽힌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겠나. 옛날 생각이 났다.


엄마는 우리가 한창 자랄 때 라면을 두 박스씩 샀다. 안성탕면 한 상자 신라면 한 상자. “엄마 우리도 다른 라면 좀 먹자.” 하면 가끔씩 진라면, 짜파게티. 그런데 그런 라면은 금방 소비해서 안 사는 게 절약하는 거였다. 어쨌든 좀 싼 안성 탕면으로 많이 사도 금방 동이 나서 엄마는 라면을 엄청 사다 날랐다. 


엄마는 라면을 오토바이 다리 놓는 부분에 실어 왔다. 머리에 하나를이고 하나는 옆구리에 끼워서 집으로 가져간다. 라면 한 봉지에 125gX20=5kg, 두 박스니깐 10kg이다. 엄마가 마루에 라면 박스를 내려놓으면 엄마 파마머리 숨이 죽었다가 서서히 살아났다. 엄마는 그걸 보관 방법에 딱 맞게 서늘한 보일러 옆, 빛이 안 들어오는 뒤주 위나, 선반 위에 올려 뒀다. 창이 없어 빨간 백열전구에 달린 스위치를 켜야 밝아지는 웅숭깊은 보일러 실이었다. 라면이야 어두워도 어디서나 뽀스락거리는 게 꺼내기 쉬웠지만, 거기에 가끔씩, 아니 매일 쥐가 다녔다. 무서웠다. 옆에서는 기름보일러가 으르렁거리며 돌아가며 특유의 석유 향을 풍겼다. 


큰 오빠가 외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기 전 집에 있을 때, 아버지 키를 이제 넘고 목젖이 나오던, 합기도를 배우고 날라 달리던 그 시절이다. 그러니까 그는 중학생 3학년이었고, 작은 오빠는 중학생 1학년, 나는 국민학생 고학년. 우리 삼 형제는 잘 먹었다. 엄마가 농사일을 마치고 따뜻하고 찰 진 쌀밥을 저녁으로 내놓기 전까지 우리는 참을 수 없었다.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 청소년 시절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오빠는 나를 찾았다. 나는 하교해서, 고학년 정도면 되면 수능학원에 다녔고, 학원 가기 전에 양옥집에 사는 소연이 집에 가서 진귀한(그녀는 좀 부자) 물건들 이를테면 시디플레이어로 음악도 듣고 그녀의 보석들도 구경하고 수다도 떨고 집에 가면 오빠가 귀가할 시간에 얼추 맞았다. 딱 걸렸다. 

“라면 좀 끓여와.” 

“싫어.” 자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했던 시기다. 당연히 안 한다. 

“너 심부름 남은 거 몇 개야?” 

“몰라.” 


그래서 고스톱을 치고 심부름 내기를 했다. 야바우처럼 오빠는 지는 척하면서 계속 이겨서 어떨 때는 백 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나는 학교에 갔다 오고 피곤했다. 평소에 친절하지도 내가 원하는 걸 해주는 자상한 오빠는 아니다. 심부름만 시키고 까딱하면 발차기를 하거나 내 얼굴에 발을 올려 댔다. 그러니 순순히 해줄 리 없다. 


“심부름 열 개 깎아 줄게.” 솔깃하다. 스무 개 정도 남아있는데, 이걸로 빚 청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좀 버텨 본다. 

“네가 끓여 먹어라.”

오빠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났는데, 그래도 너, 다. 자의식이 생겨나고 있었으니, 나한테 잘 해야지 오빠고, 그렇지 않으면 야, 너. 

“뭐? 너라고 이거 오빠한테 말버릇이 뭐라.” 

못 들은 척한다. 심부름 몇 개 더 탕감하려고 버틴 게 역효과 난 것 같다.

“아, 알았어. 끓일게. 열 개라고? 대충 끓인 데이.”


그리고 안방에서 물러가 한 칸 내려서 부엌을 지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빨간 장판을 깐 보일러 방에 들어간다. 낮인데도 창이 없어 어두컴컴하다. 엄마가 며칠 전에 사 온 라면 박스가 반이 사라졌다. 손을 넣어 안성 탕면을 하나 꺼냈다. 냄비에 일부러 물을 많이 부었다. 내가 먹으려면 반 컵 적게 딱 적당하게 했지만 미운 놈에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줄 수는 없다. 주황색 가스 밸브를 열고 가스불을 톡 하고 켠다. 파란 불이 참 예쁘다. 가스 향이 살살 난다. 라면을 뜯는데 그놈 목소리가 들렸다. 


“계란 넣어줘.” 

“뭐? 뭐라고?” 못 들은척한다. 해 주기 싫단 말이다. 

“계란 넣어 달라고.” 

“싫어.” 

“심부름 하나 더 깎아 줄게.” 


대꾸는 하지 않고 냉장고에 계란이 있는지 보러 간다. 있다!! 에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있으니 넣어줄 수밖에. 물이 팔팔 끓어 라면을 넣고 수프를 넣었다. 국물이 멀건 게 딱 봐도 맛이 없을 것 같다.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뭐 어때 하면서도,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넣었다. 계란을 넣어서 풀었어도 맛없어 보인다. 알게 뭐람.

반상에 냄비 받침을 올리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올려서 가져갔다. 한 턱 높은 부엌 문턱을 균형을 잘 잡아서 딱 올라서서 안방에 누워서 리모컨을 돌리시는 큰 오빠 양반에게 갖다 받친다. 


“김치는?” 

“말 안 했잖아.” 

“김치 가져와.” 

“싫어. 먹고 싶은 네가 가져와.”

“또, 이게 너라네. 오빠 해야지.”

나는 고개를 돌리고 마루로 나가려고 했다. 

“심부름 한 개 깎아준다. 선심.”


선심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고스톱의 그 함정에 빠진 내가 바보지. 그러면서도 그 노예 계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화를 참고 갖다 줘야 한다. 말없이 또 한 칸 내려 부엌에 가서 냉장고 문을 연다. 작은 김치 통에 김치는 없고 청각과 부추 조각에 김치 달랑 하나가 김치 양념에 떠 있다. 그러나 말거나. 그냥 가지고 갔다. 

“야, 이거 뭐야. 김치 한 젓가락밖에 없잖아.” 

“그래서?”

“김치 좀 내어 와.”

“그거는 좀 힘든 일이라서 심부름 세 개는 깎아야 할 것 같은데?”

“와,, 진짜 도둑놈 심보네.”

도둑놈 심보는 당신이지. 그래도 나는 속으로 식- 웃었다. 

“알았어. 일단 라면 식기 전에 가져와.”

“양재기를 가지고 수돗가에 갔다. 김칫독 뚜껑을 열고, 그 위에 허여멀건한 김치를 한쪽으로 살짝 비켜 두고 그 아래 빨간 김치를 (축축한 게 만지기 싫으니 ) 엄지와 검지로 건져 낸다. 아, 신선한 김치 향에 군침 돈다. 부엌에 가서 김치를 이파리 부분만 한번 댕강 썰어서 종지에 올려 오빠에게 갖다 줬다. 

“장난쳐? 나 이파리 안 먹어.”

“그런데?” 

“줄기 가져오라고.” 

“아, 그래? 미리 이야기하지. 심부름 두 개 깎자.”

“몇 개 남았지?”

“이제 두 개.”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다섯 개가 더 남았다. 그를 시험해 보는 거다. 

“뭐라카노. 분명히 다섯 개는 남아있는데.”

진짜 바보는 아니다.

“그렇네. 그럼 이번에 깎음 세 개 남는 거야.”

줄기를 썰고 하얗고 신선한 부분을 한 개 먹고 오빠에게 달려갔다. 

“밥.”

“뭐?”

“모자라는데 밥 좀 가져와.”

“심부름 한 개.”

“가져오기나 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 먹은 후, 그는 양심은 있어서 상은 치워 달라고 했다. 그래서 두 개 심부름을 깎았다. 그 노동을 다 하고, 심부름 스무 개를 청산했더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그리고 좀 심심하다. 


“오빠, 우리 심부름 내기 고스톱 할까?”나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승산이 거의 없는 그 내기를 또 하겠다고? 그런데 오늘은 오빠를 살살 꼬셔서 심부름을 다 깎지 않던가. 해 보니 심부름 열 개 깎는 건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어른들이 그러는 것처럼 노란 호랑이 담요를 꺼내서 반으로 접고, 반듯하게 털을 한곳으로 몰리도록 쫙 몰아준다. 그리고 그 위에서 오빠와 한판 뜬다. 이번엔 내가 이길까? 오빠가 이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