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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Mar 25. 2024

엄마의 빨래터

동네 냇가에는 시멘트로 다진 너른 빨래터가 있었다. 온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그래봤자 겨우 10명) 빨래하면서 정보를 나누고 수다를 떠는 화합의 장소이기도 했다. 지대가 높은 마을에서 무거운 빨래 대야를 옆구리에 끼거나 머리에 이고 이끼가 낀 낮은 계단을 서른 개를 내려가서 빨래를 해야 하니 빨래터가 아무리 넓어도 동네 아낙들의 발길이 드물어졌다. 겨울이면 길쭉한 밤나무 낙엽이 빨래터 웅덩이에 쌓이고 거기에 빨간 토종 밤이 떨어져도 누구의 눈길도 끌지 않았다.  빨랫터 한켠 졸졸졸 흐르던 샘물과 바닥에서 모래를 하나씩 쳐내던 그 맑은 샘물에 물미역이 자라고 개구리가 알을 까고 거머리가 둥둥 떠다니던 어느 시절이었다. 


강 상류 보에서 물을 끌어내 마을 허리를 휘감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아랫마을까지 흐르는 농수로가 있었다. 너비 1미터 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아 열 살 난 아이들이 수로를 폴짝 뛰어 건너는 놀이를 할 정도의 너비였다. 봄이면 수문을 반 열었다가 양파 농사가 끝나고 벼를 심기 위해 논에 물을 댈 시기에는 수문을 활짝 열었다. 겨우내 쌓였던 밤나무와 감나무 잎, 진흙과 먼지를 청소하는 작업을 하려고 동네 아저씨들이 모였다. 반나절이면 할걸, 넓고 진흙이 많은 수로 밑에 사는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그들은 삽과 그물, 양동이까지 들고 왔다. 반두를 똑바로 잡아라, 삽으로 파기나 잘 파라. 어허 고기 다 놓치네, 미꾸라지를 많이 잡는 것보다 다투는 걸 더 많이 한 장년들이 양동이 가득 미꾸라지를 채우고 나면, 거기서 동전도 줍고, 소주 빈병이나 누구네 신발 한 짝과 흙을 리어카 한가득 채웠다. 온 동네에 진득거리는 흙내가 났다. 세차게 흐르는 물이 터놓은 논 물꼬로 들어가면 여름이 시작된다. 양파 밭에 물이 스며 들었고, 누구네 보리밭에도 물이 들어가고, 그리고 누구네 비닐하우스 드럼통에도 물이 찰랑거렸다. 


수로를 청소하고, 하는 김에 권호네 집 옆에 헌 간이 빨래터를 콘크리트를 쳐 보기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권호네가 유세다. 그 작은 집. 옛날식 슬레트 지붕 집 두 칸. 그 집 개는 우리 집 개보다 못생긴 게 짖기만 자꾸 짖었다. 우리 집에서 권호네까지는 멀지 않았다. 동네가 작아 앞 동네 뒷동네 할 것도 없지만, 아낙네들은 굳이 편을 갈랐다. 앞 동네 우룩묵 댁, 장계댁, 곰실 댁, 감나무 댁, 대남 댁은 앞 동네, 상술이 저거 엄마, 구장네, 계실 댁 이렇게 해서 뒷동네 아줌마들인데, 그들은 윗수로에 작은 간이 빨래터에서 자기 빨래를 하면 될 것이었다. 그래서 권호네 집 옆 빨래터에는 앞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빨래를 한다. 동네 아줌마들(그때는 다 젊은 새댁이었던)이 빨래 방망이로 힘차게 빨래를 친다. 빨래판과 빨간 고무 대야와 놋쇠 대야에 옷을 잔뜩 넣어간 간 엄마는 먼저 온 우루묵 댁에게 인사한다.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아이고, 상수네 빨래 좀 봐. 애 서인 집은 역시 빨래가 한정 없다. 그걸 어느 세월에 할낀고.”


엄마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가져온 빨래를 바닥에 늘어놓고 흰 것과 색깔 있는 걸로 구분하고 물이 4분의 3높이로 찬 수로에 허리를 숙이고 대야에 물을 가득 채웠다. 나는 권호네 집 담벼락에 등에 대고 엄마가 빨래하는 모양을 구경한다. 


엄마는 초벌 빨래를 했다. 놋쇠 대야에는 넌닝과 팬티를 주로 넣었다. 아버지의 넌닝. 엄마의 흰색에 핑크색 꽃다발 무늬가 있는 팬티, 그리고 내 기저귀와 행주. 물을 흥건히 적신 빨래에 미끄덩거리는 곰표 비누로 비누칠 한다. 살곰살곰 더러운 곳만 문지른 다음에 놋쇠 대야에 넣는다. 그리고 그걸 바로 가스 불에 올려 삶았다. 엄마는 빨래 삼기를 좋아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인따르시아 라는 질 좋고 예쁜 양말을 모두 거기에 넣고 삶는 덕분에 넌닝도 노란색과 초록의 얼룩 염색이 되었고, 알록달록하던 양말이 희게 탈색되었지만 삶지 말라는 내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번 그렇게 만들어놨으니 그것을 좋아했음이 틀림없다. 빨래가 하얗게만 되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누렇게 타기도 했다. 비닐을 대야에 씌워서 삶는다. 엄마의 삶은 얼마나 바쁜지 빨래가 삶아지는 걸 보고 있을 여유가 없다.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버지가 부르면 도와줘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그러니 비눗물이 보글보글 끓다가 쫄면 그 사이에 흰 빨래가 누렇게 타는 것이었다. 


색깔 있는 겉옷과 청바지, 아버지 검은색 양말 등을 엄마는 흰 빨래처럼 똑같이 비누 칠을 한다. 세차게 흐르는 물에 작업복을 넣어서 착 물을 적시고 다시 맨질맨질해진 시멘트 바닥에 척 올리면, 그 소리가 경쾌했다. 대충 빨래 방망이로 팡팡팡 두드리는 듯싶더니, 대야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오늘은 아무래도 시간이 없네. 장에 가서 고기 좀 사 와야겠어요.” 

손을 대충 바지춤에 닦고 엄마는 또 들로 향했다.


그다음 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학교를 마치고 걸어서 들판을 지나 집으로 걸어간다. 들판에 볼 것이 뭐가 있겠냐만은 잘 자란 보리.(시골에서 보리는 드물었다. 보리를 먹지 않을 때), 그러고는 이제 양파가 은근한 향을 내고 꽃을 피울 때다.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 나오는 그런 푸른 나뭇잎처럼 미루나무의 작은 이파리들이 찰랑 찰랑 빛을 반사하던 때다. 


마을을 지나는 농수로는 시멘트였지만 들판으로 흐르는 수로는  듬성듬성 큰 바위로 쌓은 50센티미터도 되지 않은 진흙 둑이었다. 잘 자란 긴 풀 사이사이 스며들 듯 물은 빠르게 끊임없이 흘렀다. 마을에 가까워질 무렵 외딴 집 옆 수로에 어색한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청바지 하나, 그리고 그 옆에는 주황색 셔츠 하나, 그 위에 올라가니 검은 양말 하나. 우리 집 빨래다. 오빠 옷, 내 윗도리, 아버지 양말이 흙에 파묻히고 군데군데 풀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며칠 전 하루 종일 비가 와서 권호네 빨래터에 재워 둔 우리 집 빨래 대야가 불었던 물에 떠내려 온 것이다. 상류로 오르다 보니 한두 개가 아니다. 우리 집 빨래가 다 떠내려간 것 같다. 


가슴이 콩콩 뛴다. 저걸 어떻게 다 건져야 하지? 

엄마!!!! 엄마는 없다. 낮인데 일하러 갔다. 오빠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빨래 장대를 들고 수로로 뛰어 갔다. 긴 막대기로 하나씩 진흙에 파묻힌 바지를, 풀숲에 걸려서 따라나오지 않는 양말을 요리조리 당겼다 빼면서 하나씩 모았다. 

“뭐하노?” 우루묵 댁이 그 요상한 광경을 궁굼하게 여겨 물었다. 

“네? 이거 보세요. 엄마가 빨래를 떠내려 보내서.” 

“너거 엄마가 그렇다. 정신이 없어.”

 

우루묵 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땀이 주르륵 흘렀다. 서너 개 건지긴 했는데, 양말은 짝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부운 물살에 어떤 것은 아랫마을까지 완전히 떠내려 가던지 아니면 진흙에 깊게 파묻혔을 것이다. 그 허탕한 마음이란. 


저녁, 들에서 돌아온 엄마를 보자마자 소리부터 질렀다. 

"엄마는!!! 비가 오면 빨래를 가지고 와야 할 거 아니야." 

“뭐?”

“빨래터에 빨래가 부운 물에 다 떠내려갔어. 내가 농수로에서 건져왔잖아.”

“아참, 그걸 깜빡했네. 어짜노.” 


엄마가 빨래를 모두 건져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리고도 몇 번 나는 우리 집 빨래를 농수로에서 발견하고 건지는 일을 해야했다. 엄마가 권호네 집에서 자기 빨래를 잘 봐달라는 당부도 그리 먹히지 않았고, 스스로도 기억을 못 믿었지만, 뭐 몇 년 후 세탁기가 들어오고 나서는 옛날 실수야 우스갯 일이 되어버렸으되 내게 진흙 속에 파묻는 우리집 빨래를 허망하게 바라보던 그 기억만은 생생하다. 엄마는 더이상 빨래통을 들고 빨래터에 나갈 일도 더 이상 빨래가 떠내려가는 일도 없어서 다행이겠다. 나는 빨래터에서의 엄마가 힘차게 빨래 방망이를 내리치고 동네 아낙네들과 쓸데없는 일로 눈을 흘기고 웃던 모습만은 엄마의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것 같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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