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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Apr 08. 2024

눈 내린 밤


일요일 아침 지원은 시래국에 밥을 말아먹다가,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숟가락을 들어서 눈앞으로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젓가락 질을 멈췄다.


“가만, 가만히 있어봐.”




끼익 하는 소리와 웅웅거리는 스피커 잡음이 들렸다. 지원은 마루에 나가서 바람소리와 방송을 구분하려고 귀를 기울였다. 마을 끝 감나무 꼭대기에 걸려있는 나팔 모양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구장의 목소리는 바람에 휩쓸려 희미했다.


 


“아아, 동네 주민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오늘, 한파와 폭설이 예상됩니다. 끼익. 수도꼭지, 계량기 등의 동파와 폭설을 대비해 비닐하우스 눈 치우기를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끼익. 저녁 일곱 시 장계 양반 댁에서 모임이 있을 예정이오니 시간 되시는 분들은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구장이었습니다.”




“엄마, 우리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뭐 해. 고스톱 치겠지.”




겨울이면 장계 댁 안방에서 동네 모임이 벌어졌다. 일 없는 동네 아낙네는 일거리를 들고 모였고, 남자들은 긴 겨울밤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이나 윷놀이를 했다. 길쭉해서 옆으로 좁은 안방은 장롱을 길게 넣어서 앉을 자리가 비좁았다. 너르고 좋은, 또 아랫동네와 뒷동네 가운데 위치한 구장집이 아니라 아랫동네 좁은 자기 집에서 늘 모이는 것을 지원은 항상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원은 저녁이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옆 옆집 아저씨 대남 양반가 허리를 구부정한 허리를 살짝 펴며 마루에 올라섰다. 


“대남 양반, 오늘 주머니가 불룩한 것 보니 오늘 우리한테 단단히 투자를 하려고 한 모양이네요.” 장계 양반이 대남 양반에게 인사 차 말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어른한테 농치는 것 좀 보게. 그 반대일세. 오늘 네 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갈 작정이고만.” 대남 양반은 감색 일꾼 잠바를 벗어서 안방 벽에 걸고 노란 담요 앞에 앉았다. 


“우루묵 띠기도 오셨다. 외딴집에서 윗동네까지 너무 멀어서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큰 행차를 하셨네.”


아버지는 연달아 농을 쳤다. 


“쟁기 양반, 오늘 고스톱 치기 전에 한 잔, 하셨나배.”


우루묵 댁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대야 앞 엄마 옆자리에 앉았다. 


“며칠 큰 한파라는데 쟁기 양반, 소마구 덮개는 달았어요?”우무묵 댁이 장계 양반에게 물었다. 


“오늘은 그걸 한다고 얼마나 부산하게 다녔던지, 그걸 하고 나니 한숨을 좀 돌렸지요.” 


옆에서 팥에서 돌을 가리던 장계 댁이 말했다. 


“동지도 다가오고, 올해는 팥이 팔 것도 안 되고 꼴랑 이래요. 한 다라이. 동지에 팥 죽 우리 식구 끓여 먹을 거밖에 안 돼요. “ 


“나는 올해, 팥은 심지도 않았어. 논두렁에 심은 노란 콩도 무슨 이윤지 작황이 좋지 않고. 그래서 오늘은 옆에서 돌 가린다고? 쟁기 띠기도 참 부지런하다. 애들 셋이나 데리고 이것저것 심고 수확하고, 쟁기 양반 뒤치다꺼리도 하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수월해질지 알았더니만 여전해. 참 복도 없다.”


“아이고, 또 무슨 소리를 해요.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요.”




그때 구장 아내가 들어와서 대화에 껴들었다. 


“우리 집 영희는 이번에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아닌기라요. 오늘 전화 와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등록금 그거 얼마나 된다고 우리가 충분히 줄 수 있는데도 그걸 아낀다고 좋다카더만. 그런 거 걱정할 필요 없구먼. 지 딴에는 부모 걱정하는기라요.”


“그 집 애들은 야무지고 효심도 뛰어나는구먼." 하고 장계 댁이 말했다. 


“우리, 오기는 이번에 용돈을 오십만 원이나 보내왔어. 돈은 있고만. 그저 지 엄마 위헌다고. 지 월급 얼마나 받는다고, 서울서 살기 퍽퍽할 텐데." 


“옥자가 엄마를 얼마나 따랐소. 지금도 그리 엄마를 위하는 가배” 장계 댁이 말했다. 


그때 권호 내외가 들어왔다. 


“애들은 자는기라?” 우루묵 댁이 내외를 보고 물었다. 


“네, 애들은 티브이 보고 자면 되고요. 이렇게 모임이 있는데 신참들이 와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지요.”라며 말하며 새댁이 웃었다. 보조개가 들어갔고 살짝 어금니의 금니가 빛났다. 


“자, 이제 다 온 것 같으니, 더 와도 앉을자리 없으니 이제 시작합시다.”라고 말하고 장계 양반은 담요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 옆에 대남 양반, 구장이 앉았다. 


“나도 빠질 수 없지.” 우루묵 댁은 팥 대야에서 몸을 돌려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 옆에는 권호 아버지가 앉았다. 


“권호 아버지는 요즘 술을 안 마시더니 얼굴에 살이 붙었어.”라고 우루묵 댁이 김천 댁을 돌아보고 말했다.


권호 아버지는 부스럭부스럭 등 뒤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자갈치, 새우깡, 빠다 코코넛, 사탕, 등의 과자가 가득했다. 


“입이 심심해서요. 담배를 끊고는 과자 입만 늘었어요.” 


“그래, 그거라도 먹어야지. 담배보다 낫구만.” 우루묵 댁이 대답했다. 


권호 아저씨는 고구마 깡을 지원에게 내밀었다. 지원은 “고맙습니다.” 하고 공손히 받아서 대야 옆에 다시 앉았다. 


이웃들이 이야기를 하는 틈타, 화투 점을 보고 있던 대남 양반이 말했다. 


“계속 그렇게 노다구만 깔 것인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 눈치를 안 본다니깐.”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자, 내가 이제 패를 돌릴 테니깐 다들 단단히 질 준비를 하라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대남 양반은 탁탁 패를 섞었다. 


우루묵 댁이 패를 보며 물었다. 


“강을 팔면은 얼마를 준대요?”


“오백 원으로 할까?” 장계 양반이 주위를 보며 물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오백 원을 먹고 이번 판은 빠지겠소.” 


“얌생이처럼 그렇게 첫판부터 강을 팔아요?” 대남 양반이 우루묵 댁을 보며 말했다. 


“아, 남 이사 그러든가 말든가." 기분이 나빠진 우루묵 댁은 장계 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 대남 댁이 들어왔다. 


“아이고, 추버라. 이 집은 후끈하네.” 라고 대야 앞에 앉았다. 


팥을 이리저리 젓는 소리가 났다. 그 사이로 딱딱 화투짝이 담요 위에 내려치는 소리가 났다. 


“이번 판은 걸렀나 보네. 어, 허.” 장계 양반이 혼잣말했다. 그걸 듣고 대남 양반이 답했다. 


“그러게, 젊은 양반 주머니의 돈은 다 내 것이니깐 미리 바치라고, 그럼 좀 봐줄 테니깐."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구장은 날카로운 콧대 사이에서 가느다란 눈을 좌우로 굴렸다. 


권호 아버지는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에이스 하나를 입에 물었다. 좌우의 분위기를 살피며 자기 패를 꼭 쥐고 물었다.  


“제 할 차례입니까?”


“자기 차례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기라.” 대남 양반은 권호 아버지를 놀렸다. 권호 아버지는 조용히 과자만 씹었다. 그리고 대남 양반이 뿜어내는 담배 냄새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맡았다. 


“돌아가는 걸 보니, 대남 양반보다 구장이 승세구만. 대남 양반은 큰소리만 잘 치지.”우무묵 댁이 허를 찔렸다. 


“아낙네들은 좀 입을 다무시고, 내 패는 내가 잘 알고 넘의 패도 잘 아니깐. 두고 보시라.”라고 뒤집은 화투짝을 원하는 구 쌍 피 위에 올리고 혀로 깔깔깔, 거렸다. 그리고 서서히 아래로 내렸다.  쌍피 구! 어 이게 어찌 된 일이고…. 아이씨.” 


그 옆에서 구장은 쌍 피를 먹었다. 그리고 흐뭇하게 웃었다. 


“우루묵 띠기가 옆에서 초를 치니깐 그렇지. 저 여편네를..”


“아직, 난 게 아니라요. 참으세요.“ 


장계 양반은 그 말을 하면서 쩝쩝거렸다. 


지원은 아버지 차례가 되면 골라낸 잔 돌을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돌려 아버지를 봤다. 


“에이 줬삐라이.” 라고 연신 권호 아버지에게 피를 내어주던 아버지의 그 체념적인 말투와 손짓에 지원의 마음은 여러 번 쿵 하고 내려앉았다. 권호 아버지가 못 먹으면 야무지게 자기 패와 다른 사람들의 패를 둘러보고 계산을 하던 구장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 피와 강을 땄다. 홍단에 피가 두 개가 더하고 강 2점까지 9점으로 구장이 났다. 


“아이고, 쟁기 양반 덕분에 구장이 났고만요.” 우루묵 댁이 보고 입방아를 찧었다. 


“쟁기 양반은 피박에 강박에 세 배, 그러니깐 2700원을 주시고, 그리고 대남 양반은 900원, 권호 아버지도 900원 얼른 주시오.”라고 구장이 말했다. 그 옆에 우루묵 댁은 작은 눈을 번뜩거리며 “이번 판에 강 하나만 팔기를 잘했네.”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저놈의 여편네의 입 방아 때문에 내가 진 게 아니라?” 대남 양반이 우루묵 댁을 눈으로 흘기고 말했다. 


“아니, 지금 3점을 날라면 멀었구만. 9점 난 구장을 이기려고 했어요? 그건 아니지.” 우루묵 댁은 지지 않았다. 


장계 양반은 대남 양반이 일어서려는 걸 무릎을 두 손으로 내렸다. 


“그만하시라요. 다음 판이 있지 않아요. 다 꼰 사람은 안 말도 안 하는데, 지금 900원을 꼰 사람이 옆집 위로를 하는 대신, 화를 내시기 있어요 없어요. 어른이 참는 거지요.” 


대남 양반은 그런 농에 그냥 화를 삭였다. 그 앞에서 멀리 성질내는 남편을 대남 댁은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양반 성질은 알아줘야 해.”라고 중얼거렸다.      


장계 양반은 콩을 가리던 장계 댁을 돌아보며 말했다. 


“잔돈 있어?” 


돈을 잃은 남편을 흘겨보며, 장계 댁은 잠시 생각했다. 


“딸, 보일라 실에 아버지 잠바에서 잔돈 있나 보고 있으면 가져와. 아님 내 지갑을 보던가.” 지원은 엄마 지갑에서 천 원짜리와 동전 다섯 개를 가지고 얼른 안방에 들어가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척하고, 돈을 아버지 담요 자리에 던졌다. 


“아이고 여편네가 조신스럽지 못하게.” 


“장기 양반, 또 와이라카노. 돈 꼰 사람이 목소리는 크데이. 도박하라고 돈을 주는 여자가 얼마나 착하노.” 우루묵 댁은 언제나 장계 댁 편이 되어 거들었다. 


그 와중에 구장은 딴 돈을 오른쪽 무릎 아래에 담요에 슬며시 넣고, 누런 담요 위에는 오백 원짜리 서 너개와 동전만 올려놓고 패를 섞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우리 점당 200원 어때요?” 


“촌 동네 구장이 도박을 조장하네.. 어허, 말세다.” 장계 양반이 한마디 했다. 




우루묵 댁이 “나는 그럴 돈이 없고만!! 점 당 10원으로 하면 할 생각이 있지요.” 하고 웃었다. 


화투 치기는 열 시까지 계속됐다. 밤은 깊어 가고 밖에는 눈이 고요하게 내리고 있었다. 가끔 황석산에서 삭풍이 불어 뒷집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쓸어갔다. 


“어이 장기 띠기. 단술 해 놓은 거 있다면서. 그거 맛 좀 보자.”조용한 틈을 타 우루묵 댁이 말했다. 모두들 동시에 그 달짝지근한 음료를 생각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딸이. 목욕탕에 가면 널찍한 솥이 있을끼라. 양재기 가져가서 손님들 수만큼 좀 퍼와.”라고 장계댁이 지원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지원은 작은 안방에 담배 연기로 탁탁 해진 곳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시원하게 단술을 들이켤 걸 생각하자 침이 고였다. 지원은 벌떡 일어나서 목욕탕으로 향했다. 뽀얀 단술에는 살얼음이 껴 있었다. 국자를 얼음에서 떼어내서 두 어번 저였다. 탄탄한 쌀알이 둥둥 떴다. 오봉에 그릇을 아홉 개 얹히고 딱 서너 입 먹을 만큼을 펐다. 숟가락을 아홉 개 얹었다. 부엌 턱을 넘을 때 살짝 휘청거렸다. 단술 그릇 두세 개가 넘쳤다. 지원은 좀 더 조심해서 두 손으로 오봉을 받치고 발끝으로 안방 문을 두드렸다. 


“엄마!”


“이 집 딸도 다 컸구먼."이라고 우루묵 댁이 큰 오봉을 받으면서 지원을 칭찬했다. 


지원은 부끄러워서 대야 앞에 앉아서 얼른 단술을 한 모금 마셨다. 겨울처럼 찬 단술이 목으로 넘어가자 뜨거운 열기도 쑥스러움도 식었다. 화투 치기의 열기도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보니깐 구장이 제일 많이 땄고, 그다음이 대남 양반. 우리 양반을 선두로 해서 꼰 사람이 주루룩이네요.”라고 장계 댁이 평을 했다.  


“그러게, 장소 제공에 단술 값도 못 받고, 꼴기까지 했으니 아 그거 참 재수 좋다.”라고 장계 양반이 말했다. 


“파합시다. 파해요. 이제 밤도 어둡고.” 우루묵 댁이 말했다. 다들 서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구장은 천 원짜리 지폐를 열 번 이상 세더니, 흡족하게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 장을 빼서 지원에게 주었다. 


“자, 이건 단술 심부름한 값이다. 내일 과자 사 먹으래이.” 지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붉히며 받았다. 


안방 문을 열고 마루 새시를 열자 찬 바람이 몰려왔다. 섬돌에 나란히 세웠던 장계 댁의 털 슬리퍼에도 대남 양반의 털 신발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우루묵 댁은 신발을 바깥으로 돌리며 살포시 눈을 털었다. 


“아이고 와 이리 춥노. 안에 있다가 나오니깐 더 추운건가. 큰일이다. 수도 얼면 큰일인데. 쟁기띠기, 내일 몇 도까지 떨어진다고 했지?”


“글쎄요. 영하 몇 3도라고 하던데…그 정도로는 안 얼끼라.” 


“작년에 수도 얼어서 교체한다고 얼마나 식겁을 했던지. 올해는 짚하고 누빔 이불로 동동 동여맸는데 효과가 있을는지 몰라.” 


우루묵 댁은 누빔 조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양쪽 겨드랑이로 손을 넣으면서 말했다. 


“괜찮겠지요.”


장계 댁은 수도꼭지와 장독대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며 딴생각을 하며 말했다. 


“모든 게 괜찮겠지요. 한파가 닥쳐도 폭설이 쏟아져도 괜찮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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