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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Mar 19. 2024

떡진 머리

첫째는 나를 닮아 머리에 기름이 많이 진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으면 정말 떡이 진다. 빗으로 빗으면 빗질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 먼지가 살포시 앉아도 꺼지지 않은 볼륨은 옛 영화배우가 포마드 기름을 바른 것에 버금갈 정도다. 오늘은 그 빗질 자국을 그대로 하고 학교를 갔다. 

"머리 좀 감자." 

묵묵부답. 

"머리 좀 감으면 안 될까?" 

응하지 않으니 며칠을 놔 뒀다. 어느날 그걸 발견한 남편이 예민한 아이를 두고 바로 입을 댔다. 

"요나스, 너 머리에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샤워 좀 해." 

"아빠는 나가지고 맨날 그러더라." 라고 아니는 짜증냈다. 

'앗싸, 남편이 첫째한테 걸렸다.'하고 고소해하며 뒤에서 듣고 있었다. 아빠를 좋아하는 첫째도 그런 아빠의 잔소리가 싫어서 짜증을 냈다. 어떤 날은 그래서 머리를 감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고함만 쩌렁쩌렁했다.  


나는 기름진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목욕은 자주 안 해도 머리만은 꼭 감았다는 이상한 소녀였다. 특히 기름진 머리가 싫었다. 내 머리 냄새가 싫었는데 안 감을리라. 그런데 학교에 꼭 머리를 감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미나, (아, 미나야 미안하다.) 

실명 공개. 박미나였다.

 

미나, 아직도 시집을 안 가고 시골집에서 처박혀 게임을 한다던가. 

아니면 언제는 만화를 그린다던가. 

고등학생 때 미나는 HOT팬픽에 빠져 있었다. 

여하튼 그런 미나는 중학생 때 매일 머리가 떡져 있었다. 한 번도 그 아이의 머리가 찰랑 거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교복을 갈아입기 귀찮아서 그대로 입고 자고 그다음 날 그대로  학교로 온다는 정은이의 머리도 찰랑거렸다. 그런데 왜 미나의 머리만 그렇게 떡지고 기름이 줄줄 흐렀던가. 바람이 불면, 바람이 그 사이를 뚫고 갈 틈이 없다. 어쩌다 그녀의 정수리를 보게 되면 비듬이 검은 머리에 설탕 파우더를 뿌린 것처럼 있었으니, don’t touch 그렇다. 만져서도 안 되고,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그러고 보면, 머리만 떡진 게 아니라, 그녀의 교복마이 위에도 기름이 번졌는지 머리가 닿는 어깨죽지는 기름이 져서 반질반질했다.

미나는 왜 그랬을까? 내 아들을 보자면, 그런 떡진 머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엄마인 나조차도 그걸 만지거나 냄새를 맡고 싶지 않지만, 자기는 태연하다. 머리를 감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머리를 감으라고 하는 건, 뭔가 추가적인 노동, 이를테면 숙제를 하고 원하면 해도 되는 다른 한 장의 연습 숙제라고 할까. 그래서 끝까지 저항한다.

미나 집에는 딸기 농사를 지었고, 미나 외할머니는 정말 곱고 다정했는데, 내가 가면 아삭아삭한 콩나물무침을 반찬으로  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콩나물무침이 미나 집에 있었다. 

그런 미나는 국민학생때부터 그렇게 뽑기에 광적이었다. 한 날은 만 원을 가지고 왔다. 만 원,,, 뽑기 하나에 50원하는데 만 원을 가져오다니, 그러니깐 몇 판이니? 계산해 보시라. A4용지 두 개를 세로로 붙인 크기에 다닥다닥 호치키스로 뽑기가 붙어 있었다. 물론, 뽑기는 당첨될 확률이 적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그런 걸 몰랐다. 어른들이 함께 갔다면, 우리가 그 뽑기 중독에서 일찍이 손을 뗄 수 있었을까? 그렇지도 않을 것 같지만. 지금의 스마트폰 중독보다 더 무섭고 흡입력 강한 뽑기 중독. 

그날 미나가 내 코앞에서 만 원짜리를 흔들었다. 나는 몇 백원을 이미 뽑기와 다른 오락기에 다 써버리고 다른 아이들이 뽑기를 하거나 과자를 사 먹는 걸 구경했다. 거기에는 노란 장판을 씌운 평상도 있어서 앉아서 구경하기에 참 좋았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어김없이 그 점방에 들렀다. 

미나의 목표는 문어였다. 그 시커먼 문어는 자랑스럽게 그 점방의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었다. 말려서 딱딱한 그 문어는 러시아에 왔는지 정말 컸다. 그 시커먼 색깔이 위압적이었는데, 그 옆에는 반짝거리고 투명한 설탕으로 만든 잉어 엿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뽑기의 1등 상이었다. 일단 미나는 많은 뽑기 판 중에서 1등 상으로 문어를 받을 수 있는 걸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몇 백원이 있을 때의 그 하나하나 세심하고 촘촘한 뽑기가 아니었다. 뭉텅이로 뽑았다. 만 원을 가진 자의 호방함이었다. 그리고 혼자 보기엔 힘드니 나중에는 옆에 있던 나보고 봐주라고 했다. 


"꽝. 꽝. 꽝. 꽝. 에이 뭐야 꽝밖에 없잖아." 

원래 꽉 차 있던 뽑기 판이 헐벗었다. 맨살이 드러난 대머리처럼 썰렁했다. 그리고 몇 개만 남아있을 때, 이제 좀 재미가 없었던 나는 먼 산을 봤다. 그 옆에는 미진이가 아직도 집중하면서 뽑기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꽝, 꽝, 꽈…아니 1등. 야!!! 일등이야." 

"뭐?"

미나는 들고 있던 뽑기 판을 집어던졌다. 그 순간의 웅성거림을 눈치를 챈 주인 아주머니의 눈이 갸름해졌다. 

"먼저, 뽑기 한 것들 얼마인지 세어 보자."

팔천 원 이상을 뽑았다. (그게 몇 개인지를 직접 세어보길) 그리고 천 원에 몇 백원을 돌려받았다. 

“그거, 1등 상 뽑은 쪽지는 어딨어?” 

“여기요.”

미나는 손에 땀이 기이하게 많이 나는 병 같은 걸 앓았다. 몇 분 잡고 있지 않았는데도 그 회색 뽑기 종이가 흐물흐물해졌다. 그리고 손톱으로 살짝 펴서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한숨을 쉬며, 아주머니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먼지떨이를 가지고 일어섰다. 

“이거 맞지? 문어?”

“네.”

미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두 손으로 받고, 미나는 정말 환.. 하게 웃었다. 미나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걸 처음 봤다. 문어는 너무 딱딱해서 미나의 가슴 팍에 판자처럼 섰다. 그래도 미나는 요리조리 살펴보면서 좋아했다. 


나는 좀 기대했다. 혹시 다리 하나를 줄까. 아, 그럴까. 

“얘들아, 안녕.” 

그렇다. 미나는 다리 한 쪽도 주지 않고 그렇게 유유히 사라지려고 했다. "야, 우리 그러지 말고 달라스 가서 돈가스 먹을까?" 나는 미나를 잡아두면 혹시, 그 아이가 마음이 바뀌어서 문어 다리를 하나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진이와 미나 그리고 나는 달라스에 갔다. 그곳은 경양식 돈가스를 팔았다. 그 건너편에는 학생사가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오락실이 있었다. 그 시절 가장 핫한 장소였다. 

달라스의 경양식 돈가스에는 베이크드 빈, 단무지, 봉긋한 흰쌀 밥, 그리고 돈가스, 진짜 돈가스 소스를 올린 돈가스가 나왔다.(물론 지금의 안심 돈가스와 비교할 수 없는 그 얇게 저며서 돈가스 옷을 더 많이 입힌 것이었지만) 환상의 맛이었다. 약간의 양배추 채 옆에는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은 묽은 소스를 뿌렸다. 명색이 경양식 돈가스집답게 거기에는 옛날 식 볼록하게 튀어나온 소파까지 있었다. 학생사 사거리에 서면 이미 돈가스 향이 우리를 이리 오렴, 하고 손짓했다. 

미나는 가방에도 들어가지 않는 문어를 다른 자리에 놔두고, 돈가스를 먹었다. 그날은 돈가스를 먹으면서도 나는 미나의 문어를 힐끗힐끗 훔쳐봤다. 뻣뻣한 저 문어를 입이 꽉 찰만 하게 잘라서 오물오물 불린다. 짭조름한 그 맛이 일품인데, 10분을 불려도 여전히 딱딱한 그것이 서서히 말랑해진다. 침이 자꾸 흘러나와 쓰읍,,, 하고 한번 입꼬리에 흐린 침을 삼키고 다시 한번 깨물면,,, 후루룩하고 문어가 흔적도 없이 내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단무지 하나를 다 먹고도, 그리고 달라스 문을 나와 다시 한번 그 환기통에서 나오는 돈가스를 튀기는 기름 냄새를 맡고도, 미나가 저기 서울 방앗간 앞을 지나가는 걸 볼 때까지, 미나는 문어 한 다리를 내게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미나야. 너 참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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