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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Jun 10. 2024

소풍 가는 날

 소풍 가는 날이다. 따끈따끈한 김밥을 가방 맨 밑에 깔고 그 위에는 가벼운 오징어 칩과 자갈치 그리고 새콤달콤을 넣었다. 단 캔 음료수(맥콜이나 밀키스)도 쑤셔 넣었다. 얼마 전에 사 둔 새 옷을 입고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본다. 머리를 곱게 빗고 아침 이슬을 밟으며 학교에 간다. 학교 점방에는 나처럼 가슴이 설레 일찍 온 아이들이 있었다. 점방 주인아줌마도 아직 눈곱을 덜 뗀 것 같은데… 소풍날에는 아침 장사만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나온 듯했다. 점방 앞에는 뽑기 기계가 돌아간다. 불을 반짝이면서 동그라미로 찍다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다 한 번에 불을 밝혔다 다시 켜진다. 나를 유혹한다. 엄마한테 이 천 원 용돈을 받았다. 이거라면 문어다리도 사 먹을 수 있고, 오십 원짜리 뽑기를 스무 번 할 수 있다. 마음은 가방에 찬 맛있는 것만큼 꽉 찼다. 

검은 몸체의 뽑기 기계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백 원을 넣었다. 딸까닥. 기계는 코인 두 개를 뱉었다. 앗싸. 다시 한번. 띠띠띠~ 코인 다섯 개. 뭐야 소풍날은 운도 좋은 거야? 아 어쩌지 이미 가방이 무거운데 이 코인을 어떡하지? 뭘로 바꿔 먹지? 먹을 게 너무 많단 말이야. 기분이 너무 좋아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혹시, 내가 재수가 좋은 걸 다른 아이들도 눈치를 챘는지. 그들의 무심한 눈빛에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한번 코인을 넣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빨간 점을 지켜본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에이 그러면 그렇지. 천 원을 다 꼴았다. 다른 학생들이 삼삼오오 읍내 사거리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나처럼 반질반질하게 멋을 낸 아이들. 들뜬 얼굴에 영락없는 그 몸동작. 


“영숙아, 왔어? 오늘 우리는 솔밭에 간다지? 작년에도 솔밭에 갔잖아. 나는 솔밭보다 농월정이 더 좋은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깐 우리, 개구리 폴짝을 할까?”

“우리 둘이서 뭐 하니?”“저.. 기 봐! 개구리 같은 주희하고 캥거루처럼 잘 뛰는 미진이 오잖아. 네 명이면 아쉬는 대로 오케이!!”

앞 뒤끼 뒤뛰끼 가위바위보. 나는 이 방법으로 편 가르기가 제대로 될까 의심했다. 네 명이 손바닥, 손등, 손바닥, 손등을 뒤집기를 열 번. 나는 용수철 같은 미진이와 한 편이 되었다. 소풍 가방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던져버렸다. 

“영숙아, 선을 잘 그어.”내가 말했다.  

“주희야, 동그라미를 자꾸 크게 그릴래? 야, 그럼 술래가 너무 쉽게 잡아서 재미없어.”라고 미진이가 말했다.  

“아, 알았어. 이렇게 작게 그리면 되지?” 주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0.1m 줄였을까. 원래 점프력이 좋은 미진이는 이미 출발 상자에 들어가 도움닫기를 했다. 오예. 나는 이 중간을 삭~ 얌생이처럼 들어갈까 말까. 주희의 표정을 보니 이미 내 표정을 다 읽었고 내 동작을 보고 방어자세로 나왔다. “야, 고마해라. 아 이렇게 해야 나도 살지. 미진아 뛰어.” 개. 한 발짝 뛰고 미진이는 다시 한번 구. 를 뛰었다. 아직도 다음 상자까지는 거리가 멀다. 술래들이 옷자락을 스치기만 해도 잡히니 그들이 지옥에서 팔을 털어 흔들어 불티에 맞을까 살짝 뒤로 물러나려고 한 발자국 집어도 리. 가 된다. 내가 중간에서 술래들을 일어나는 걸 보고 상자 끝으로 폴짝하고 넘었다. “아 뭐야. 저거. 넘었다.” 그리고 주희와 영숙이가 한눈파는 사이 미진이는 리. 폴. 짝. 하고 건너편으로 들어갔다. 앗싸. 아하하하 성공한 우리 둘은 손뼉을 치고 폴짝폴짝했다. 진 주희와 영숙이는 죽상. “야. 안 되겠다. 저기 남희 온다. 뒤에 정은이도 오네. 같이 하자.”라고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렇게 게임은 커지고, 옷깃을 스쳤느니 마니니 하고 싸우는 중에 학교 운동장은 이미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소풍날 아침을 뜨겁게 개구리폴짝으로 달군 우리는 가방을 메고 열을 지어 솔밭으로 소풍을 갔다. 

 그 설레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재현해 주려고 슈퍼에서 원하는 걸 모두 사라고 했다. 내가 같이 가면 제한되는 먹거리가 있었다. 되도록이면 허락했다. 남편이 간다고 한다. 갔다 왔는데 치즈 스틱, 소시지 두 개, 칩 하나 달랑 사 왔다. 아이들의 가방이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의 소풍 가방보다 훨씬 초라했다. 좀 더 몸에 나쁜 거. 요상하고 이상한 군것질을 몽땅 사 먹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허전하고 부족했다. 

껌 씹기에 빠져 있는 첫째를 위해, “껌이라도 하나 사지.”라고 했더니 아들이 답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선껌 BumBum이 있었는데 아빠가 설탕이 들어있다고 안 된댔어.” “다른 껌은 없었어? 아 그래도 소풍인데… 그냥 사주지.” 나는 남편이 교육에 대한 주도권을 내게서 빼앗고 주도하려고 하는 양상이 보여서, 물었다. 

“껌을 사줘도 돼? 그럴 거면 당신이 슈퍼에 가지. 맨날 뭐를 사 오면 불평을 하잖아.”

“아니, 지금 이 상황만 가지고만 이야기해. 가기 전에 내가 아이들 소풍이니깐 많이 사서 남은 건 집에 두고 먹을 수 있게 다~사라고 했어. 그리고 내가 겪었던 소풍을 주고 싶어서. 당신이 애들하고 사 온 건 이미 끝. 벌어진 일이고 당신 의견도 중요하니 껌을 사도 되겠냐고 묻는 거야.”남편의 화는 수그러들었다. 그가 내 말을 흘려들었던 걸 인정했다.

“당신은 소풍을 간 적이 있어?”

“독일에서는 있었는데 브라질에서는 없었어.” 남편이 답했다.

“소풍날이 얼마나 즐거운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엄마한테 김밥 싸 달라고 조르고 일찍 등교해서 오락하고, 뽑기 하고, 학교에서부터 우리 동네 위에 농월정까지 걸어가는 거야. 가면 보물 찾기도 하고 둥글게 앉아서 장기자랑도 하고 수건 돌리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러니 예쁘고 새 옷을 입고 가야지. 그리고 집에 걸어오는 거야. 우리 집은 시내 가는 길이어서 시내 안 가고 바로 집에 들어가면 됐어. 집이 학교에서 멀어서 싫었는데 그날만큼은 너무 좋더라.”


추억의 폭풍이 몰아치듯 말하는 나를 보고 그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소풍은 즐겁다. 오늘 레고랜드로 소풍을 가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들의 소풍 가방처럼 빵빵하고 거기에서 친구들과 쌓은 기억도 불룩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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