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
새벽 이슬 끌어안고
한낮 열기에 곰실곰실 앓다가
서서히 말라가요
먹다만 사과맛 막대사탕처럼
떨어져요
진 꽃잎 까슬한 꽃받침 야윈 이파리들
아스팔트에 뒹굴어요
쪼개진 만 개 마음
죄어든 만 개 심장
추스려요.
본디 나쁜 씨앗 없다지요
굵은 알 키워내기 그리 쉽나요
빨간 약 되기까지 버틸 수 있나요
참새 까치 어치 비둘기 성화 어찌 견뎌요
아침녘 푸른 귀밑머리 흔들고
발갛게 볼 드러냈어요
붉게 번진 얼굴
쉬이 지워지지 않을거예요
그게 혼자만의 일이던가요
새야 볕아 물아 벗아
최후까지 숭고하게 물들자.
내 것이기도 네 것이기도 한
그 길, 모두
우리 모두의 길에서
작은 텃밭에도 잔인한 선택이 일어난다. 주인 마음대로 될 성싶은 모종은 북돋아주고 물을 더 주며 잡초도 뽑아준다. 한 벚나무에서도 어떤 열매는 익지도 못한 채 떨어진다. 톡 하고 먹다가 떨어진 사과맛 막대 사탕이 그와 닮았다. 그런 수많은 먹다만 사과맛 막대사탕과 까실까실한 벚나무의 꽃받침과 마른 나뭇잎, 꽃잎들이 바닥에 함께 뒹군다. 처량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건실하게도 잘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 틈의 버찌들. 샘 난다.
문학이란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쌓아온 재산이 있어야한다. 많이 읽은 이 잘 쓰고 많이 쓴 이 좋은 글을 써낸다. 과연 나쁜 씨앗은 없었을까. 환경이 만사를 결정하는가. 그 많은 영글지 않고 떨어지는 시퍼런 버찌에서 자신을 본다. 잘 익어가는 버찌가 되는 게 쉬운가. 내 자신은 잘 버티고 있는가.
나쁜 씨앗은 없다하면서도 왜 어떤 놈은 떨어지고 어떤 놈은 꼭지가 바람 때문에 햇빛 때문에 말라서 그렇게 톡하고 말라 떨어지냐 말이다. 떨어질 수밖에 없고 영글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것들을 대표해 몇 퍼센트의 버찌는 익어간다. 햇빛과 바람을 맞아 드디어 달짝지근한 약이 된다. 모든 새들이 부리를 모으는 맛있는 디저트 버찌가 된다.
어느 날 버찌가 발갛게 얼굴을 내민다. 반짝 반짝 검붉은 그 결실. 끝까지 버틴 놈이다. 새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바람도 이겼다. 더군다나 그 숭고한 시간을 견뎠다. 땅에 떨어져 이리로 쏠리고 저기서 밟히는 성긴 열매가 있다. 그린 후추처럼 말라가는 덜 영근 버찌는 잘 영근 버찌라도 지켜볼 수 있어서 좋다. 자신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멋진 최후는 성과는 한 나무에서 자란 그에게도 영광이다. 질투해도 나쁜 씨앗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인식의 과정인게다.
모든 것이 혼자만의 일이겠는가. 자연의 모든 요소가 원칙이 그리하여 나쁜 씨앗의 버찌를 떨어뜨렸고, 남은 놈에게 영양을 주고 약이 되는 빨간 버찌를 키워내지 않았는가. 그것이 굳이 버찌만의 일이겠는가. 사람의 일도 그렇다. 한 가지에 몰두해도 빨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처음부터 썩은 씨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무심한 자연 운명의 길이 그렇다면, 버찌를 키워주는 지켜주는 모든 사물들과 더불어 그 다른 성스런 길을 걸어보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