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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Dec 16. 2021

독일 생활의 여유

기다림으로 훈련된 여유


브런치에서 북유럽에 살고 있는 어느 작가의 글을 읽었다. 레스토랑에서 뒤에 기다리는 사람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정하는 것까지. 그걸 눈치 주는 사람은 글쓴이 혼자였다는 깨달음, 아이들이 길을 가다 한눈팔면 보채지 않고 아이들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등의 그 나라의 어린이 존중 육아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요지인 글이었다.




독일에 살고 있는 나도 주문할 때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다. 서비스가 워낙 느리다 보니, 기다리는 게 필수인 독일에서는 그런 만큼 자기 차례가 되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들여 주문이 가능하다. 케첩과 마요네즈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메뉴가 있는지 알려주고 원하는 걸 고르게 한다.




그리고 주말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선택권을 주고, 내 친구의 아들이 아닌,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생일 파티에 초대하고,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 (너무 건강에 나쁜 거라면 설득을 시킨다)




휴가를 가도 아이들의 요구에 다 따르다 보니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지만, 삶의 여러 방면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한 결과 이제 아이들이 우리 의견을 존중한다.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야 할 때가 많지만, 가정에서 배운 소통 능력은 사회에서 써먹을 테니, 일석이조이다.




놀이터에서 인기 있는 케이블 그네를 탈 때면 재미있다. 아이들이 짜름히 줄을 서고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신기한 것은 부끄러워 줄을 맞추지 않고 한편에 서도 그 뒤에 온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어려도 먼저 타게 한다. 그 규칙을 어기는 아이가 있으면 어른이나 어린이가 나타나 규칙을 설명하고 다음 차례 아이에게 건넨다.



자기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그 순서의 기회는 충분히 존중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누리고, 다음 순서로 넘겨주는 것. 거기에서 독일인의 여유가 나오지 않을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도 시간을 주며, 의견을 말할 기회도 준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규칙을 강요하는 독일인 부모,(가끔은 어린아이에게 규칙이 타이트하다고 느끼는)도 있고, 또 이민 배경을 가진 독일 거주 부모들은 그런 시간 여유와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기도 한다. 다만, 대개 가정과 사회에서 시간적 여유를 주는 분위기와 문화가 존재한다.




불편하지만 그걸 꾹 참고 있으면, 마치 그것이 인내심을 훈련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인 양 으레 다들 잘 참고 있다. 물론 때때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징징거리는 사람에게 서비스를 하나 더 주고, 또 먼저 처리해 주는 경우도 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그렇게 참고 나면 언젠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나라라서, 언제 어디서든 코 배이지 않을까 걱정이었고 누군가 내 개인 정보를 뜯어서 뭔가를 해먹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득한 어느 나라와는 달리 마음이 편하다.




한 번은 은행에 가서 저금을 하고, 추첨을 받으려고 했다. 저금통에 모은 돈을 세러 간 직원이 5분 후에 겨우 나타났고, 잔액을 프린트해주는데, 적어도 5분은 걸렸을거다. 아이들 한 명씩 사인을 하는 동안 은행에는 대략 10명의 고객들이 몰려들었다(물론, 코로나로 5명 이상은 들어오면 안 되었는데) 손님이 많은데도 우리를 담당하는 은행원은 둘째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못 쓰자 포스트잇에다가 써서 알려주고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추첨할 때, 어쩜 나는 누구의 한숨을 들었다. (독일에서도 조조들이 많다) 이제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우리를 재촉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참(독일 생활 8년째)이라 느긋하게 추첨을 하고 선물을 잘 넣어서 나왔다.




또 실험 박물관에서 자동차 만들기 체험 부스에서 우리 집 남자 세명이 자동차를 자기들 속도에 맞게 만들고 있었다. 코로나로 그 안에서 겨우 두 가족만 작업할 수 있었다. 담당자는 우리가 만들 동안 문의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다리라고 했다.




시간을 잰 건 아니지만 거의 40분은 앉아 있었고, 마무리가 시간이 오래 걸렸고, 무작정 들어오는 가족들이 네 팀이 될 때 담당자에게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담당자 앞에서 큰 소리로, “우리 너무 시간 오래 끄는 것 같아.” 하고 남편에게 말하니, 그녀가 “원래 그렇게 시간이 걸려요.”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관공서와 병원 행정 처리 속도와 시스템은 한국이 월등히 좋다. 기다리지 않아서 좋다. 그러나 그만큼 빨리해야 하고, 누군가의 눈치가 보이며, 누구에게 피해가 될까 봐, 미리 지갑을 준비하고 또 대충 물건을 고르고, 몸이 아파도 호명되면 서둘러서 간호사를 따라가야 했다. 자기 속도가 형편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문화, 그것은 스트레스였다.





독일에서는 자기 이름이 호명되어도 천천히 가고, 뒤에 사람이 기다려도 느긋하게 물건을 고르고, 혹은 슈퍼에서 지갑을 꺼내고 식품을 바구니에 넣을 때도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 속도를 지키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주문을 빨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독일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없지만, 그 시간 개념을 받아들이면 여유롭고 편안하다.




모두들 대기실에서 한 시간은 여유 있게 기다리는 환자들, 시립 병원에서 아들 깁스를 하는데 인원이 딸려(진정 그런지는 모르겠다. 원활히 소통이 안 되는 건지도 모른다) 세 시간 만에 깁스를 하고, 정형외과에서도 엑스레이 하나 찍는데 40분은 더 기다려야 하는 말도 안 되게 느린 거북이 진행 속도에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그 순서가 되었을 때는 원하는 만큼 시간을 써도 되어서가 아닐까.




평소에 여유 있는 독일 사람들도 슈퍼에서는 한숨을 쉬거나 발을 동동 굴린다. 또 국도에서 저속(80km/h)으로 운전할 때 내 뒤를 바짝 따라붙는 차들도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당황하지 않는다.




-그렇게 바쁜 일이 있으면 일찍 나오시지 그랬어요?



늦지 않으려면, 그래서 약속을 앞두고 항상 일찍 준비하고 여유 있게 약속 장소에 가서 즐기는 편을 선택했다. 기다리면서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은 독일에 오고 나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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