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츠 강을 따라

조깅기록

by 원더혜숙

오전 11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어제는 비가 와서 뛰기를 포기했다.

오늘은 겨우 날이 개었는데, 아침부터 공기가 남다르다.

이런 날 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애완견이 집업 후드 지퍼 막음쇠를 깨물어서 그것을 올린다고 한참 동안 진을 빼다 그만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벌써 공원에서 있어야 할 몸이었다.

더 딜레이 되면 못 나가갈 것 같다.


서둘러 차를 몰아 공원 앞에 섰다.

얇은 옷을 입어 으슬으슬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떠 있다.

오른쪽 주머니에 열쇠 서너 개가 부딪히면서 찰랑했다. 공원은 겨울 시즌을 쉰다. 그래도 봄맞이 준비는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검은 나뭇조각 거름이 짙게 깔려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 사이로 새잎들이 뾰족뾰족 나왔네.


산책로 왼쪽으로 무슨 병충해 예방약을 하얗게 발라놨나 하고 올려 봤더니 자작나무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공원 놀이터는 텅 비어 있고, 생일파티를 했던 레스토랑도 문을 꼭 닫았다.

일요일에는 조깅하는 사람도 산책을 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오늘은 인적이 드물다.


좁은 흙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강이 조용히 흐른다.

모던한 하얗고 반듯한 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단지 옆에 작은 산책로에 들어섰다.

높은 하얀집, 안이 훤히 보인다. 반질한 하얀 돌바닥에, 반짝이는 하얀 식탁 테이블에, 하얀 원뿔 비커 꽃병 두 개에 핑크색 장미꽃이 꽂혀 있다.

주인은 없다.

하루를 건너 뛰어서 그런지 가볍게 쭉쭉 나아갔다.

아직 짓고 있는 검은 네모 상자식의 집이, 누렇게 쌓은 자갈흙 토대를 드러내고 때를 기다리는 듯했다.



주택단지를 빠져나오니 바람이 세차다. 강 너머 풍경은 익숙한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길이다.

‘조금 더 가면 시내가 나오겠지.’

순례길 가기 전에 자주 걸었던 길을 만났다.

매끈한 강화석 비석이 서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2534km


Schaitheim은 작지만 시내여서 사람들이 북적인다.

강 옆 산책길에 들어섰는데, 갓 하교를 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학부모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활기차다.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점심시간에 웬 조깅?’



공사 중인 자갈길을 자박자박 뛰면서 역전을 지났다.

손자를 기다리는 듯한 안경 쓴 할아버지가 다리 구석에서 우산을 들고 멀찍이 학교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부터는 길도 넓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오른쪽에는 불투명 옅은 코발트색 강물이 흘렀다.

순간 빗방울이 여러 개 떨어졌다.

‘나오기 전에 너무 꿈 떠서 그런 거야.’

이제 겨우 24분이 지났으니 반 시간 비가 오면 흠뻑 젖겠구나.

‘하는 수 없다.’

톡톡톡 떨어지던 빗방울이 바람에 날렸다.

언덕배기 집 앞에 차가 45도 기울인 채 위태하게 서 있다.

계속 달렸다.

길가에 큰 트레일러트럭이 두 대 서있고, 오른쪽에는 팔레트를 빌려주는 회사는 향긋한 나무냄새를 풍긴다.

비는 금방 그쳤다.



기찻길을 왼쪽에 두고 곧게 뻗은 산책길을 달리는데 바람이 좋다.

멀찍이 파란 담요를 두른 말 한 마리가 주인을 따르고, 하얀 복실이와 검둥이가 장난친다고 엄마를 잊어버렸다.

“이리 와”


28:32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돌아오는 길은 시작할 때보다 마음은 가볍지만 몸은 무겁다.

길 옆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미나리가 잘 자랄 것 같다.


탱탱 탱탱하며, 천천히 철도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왔다.

한참을 내려가고서야 키 높이 마른수풀 넘어 기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내 도로를 건너고, 옛 물레방아 건물 옆에서 강을 굽어보았다. 물결이 햇빛을 반사한다.

조금 달리니 덥다. 바람막이를 허리춤에 두르고, 장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더 이상 찰랑거리지 않아.



체육관 뒤, 물가 요트클럽에 닿았다.

강가에서 옅은 긴 갈색 털을 날리며 콜리가 놀고 있고, 까만 보르도 콜리는 주인아저씨 뒤에 숨는다.

‘할로’

‘할로’

높은 버드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는데 ,회색 두리미가 곁눈질하고 멈췄다.

나무다리 옆에서 보니 물 위에 백조 두 마리가 유유자적하다.

언덕을 내려딛으니,

끽-. 까만 오리가 소리 질렀다.

강 너머 물가에는 오리들이 듬성듬성 모여서 물길질을 한다.


모처럼 산책을 나온 것일까, 가볍게 바람을 가로지르며 걷고 있는 여인의 머리가 향긋했다.

열쇠 넣은 오른쪽 재킷 주머니가 허벅지를 철렁거리며 후린다.

배에 힘이 들어갈 만큼 숨이 차다.

계속 뛰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51분.

맞은편 공원 글라스 다리가 물에 비친다.


자작나무 밑줄기에 눈동자가 하나가 나를 쳐다봤다. 가까이서 보니 나뭇가지가 나오기 전에 준비를 하는 자리다.



공원을 반쯤 달렸다.

대학생 두 무리가 지나갔다. 고가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아래를 굽어본다.

다리를 지나고 이제 울퉁불퉁한 자갈 블록 위 내 차가 보인다.


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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