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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ug 30. 2020

뜨거운 맛

이제 여름은 기력이 쇠하여지고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 계절이다. (또르르) 더위에 몸 상한다는 말을 실감할 때쯤 삼계탕이나 산 낙지를 약으로 먹는다. 올해는 50일째 이어진 장마 탓에 뙤약볕에 나설 일이 적어서인지 초복 중복에 이어 말복도 보양식 없이 보내고 꽤 오래 버텼다. 여름이라면 땀 흘리는 것이 마땅할진대 가게 붙박이라 땀 흘릴 기회가 적은 것도 한몫했다. 지난해와 달라진 이러저러한 환경요인 때문에 8월 중순이 지나서야 몸에 신호가 왔다. 


퇴근 후엔 그저 누워만 있게 되는데 가끔 스트레칭을 한다. 가족들은 ‘기지개 켜기’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분명 스트레칭이다. 정신을 모으고 방치되어있던 근육을 깨우는 진지한 루틴. (느슨한 루틴이라고 덧붙여 본다.) 팔다리를 쫙 펴고 굽어진 몸을 제자리에 옮겨 놓으려는 시도를 통해 내 몸이 얼마나 몹쓸 상태인지 깨닫는다.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건 심하게 틀어진 골반인데 엄마가 알려준 몇몇 자세를 취하다 보면 아랫층에서도 '저 집 큰 딸 또 기지개를 켜나보군.' 하고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을성이 없고 쉽게 끓어오르는 분이라 조심해야 하는데.)


으아아아.
운동을 요란하게 하는 편이야. 방으로 들어가.
네가 뭘 알아! 조용히 하고 있어.      


그 요란한 운동이란 것은 누운 상태에서 양팔을 머리 뒤로 깍지껴서 잡은 후 어깨를 바닥에 붙여 도르르 말린 어깨를 펴주는 동작이다. 그게 뭐야 싶겠지만 막상 해보면 쇄골 근처가 찢어지는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옆에서 누가 팔을 꾹 눌러주면 더 효과적이고 더 아프다.



편히 쉬는 자세 아니야? 휘파람 불면 딱 베짱이네.


저 녀석은 조용히 방으로 좀 들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이미 말려버린 어깨는 살짝만 펴줘도 마른 북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마른 북어인 적은 없지만.) 몇 가지 자세로 점검한 바를 종합하면 내 몸은 어깨가 굽었고 척추 아래가 휘었으며 골반이 틀어졌는데 이해하기 힘들 만큼 뻣뻣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반드시 근육통이 온다. 이때다 싶은지 요즘 인스타그램 피드엔 각종 스트레칭 기구 광고들이 나를 꼬신다. 타게팅 광고가 언짢고 성가시지만 또 혹시나 하고 클릭하게 된다. 후기를 보면 그 물건들이 다 인생을 혁신적으로 바꿔줄 12가지 신묘한 물건인 것 같다. 


며칠 전 엄마의 최애 프로그램 ‘뽕숭아 학당’을 강제 시청하는데 전문 도수 치료사가 나와 한 사람씩 몸을 바로잡아주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잠시 극한의 고통을 참으면 아픈 만큼 개운해진 표정으로 얼굴이 환해졌다. 아, 나도 선생님 손길 한번 받아보고 싶다. 요가나 필라테스, 도수치료 같은 걸 하면 덜거덕 거리는 몸이 꼭꼭 들어맞는 레고 블록처럼 제자리에 잘 물려서 쓸 만해 질 것 같은데. 종종 관절을 블록처럼 모두 분리해서 먼지를 탈탈 털고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준 후 재조립하는 상상을 한다. 긴 세월 쌓인 먼지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몸이 되는 것이다. 절도 있게 쭉쭉 펴지는 팔다리와 꼿꼿한 허리, 반듯한 어깨! 그러나 지금 나는 바닥에 삐딱하게 누워 한쪽 무릎 위에 발 하나를 걸치고 리모컨을 돌리고 있다.



가장 쉽게 잘하던 운동은 걷기인데 그마저 못한 지 1년 째다. 땀 흘리는 운동이란 건 2년쯤 된 거 같다. 한남동에서였지. 어쩌다보니 댄스, 요가, 필라테스를 접목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얼토당토않은 자세로 두 시간을 보냈었다. 관절이 분리된 후 제자리로 찾아오지 않는 것 같은 밤이었다. 그래도 뿌듯했다. 굳어진 채 변하지 않으려고 용쓰는 몸을 기어이 바꿔보려고 땀 흘린 몇 시간이 대견했다.


사실상 그 어느 여름보다 몸을 많이 쓰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씩은 서서 베이킹을 하고 매일 매장 청소도 하고, 가끔 짐도 나르고. 땀이 안 난다고 B급은 아닌데 올여름은 땀 부족 시즌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습도가 95%나 되는 끈적한 날씨 탓에 가만히 있어도 끈적하게 땀이 나지만 그런 거 말고 진짜 땀을 흘리고 싶다. 변하려고 애쓰는 땀, 으아아아 내 몸아 깨어나라! 하는 땀. 조금씩 열이 오르다 고통의 사점을 지나 평화의 세컨드윈드를 넘어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땀. 동네 뒷산에 헉헉대며 올라서서 쓰린 목구멍을 달래고 벌렁대는 심장이 진정하기를 기다릴 때 느꼈던 뿌듯함, 동네 공원을 2시간씩 걷고 현관문을 열 때 뜨거운 몸의 열기가 자랑스러운 느낌이 그립다.



그렇게 땀으로 일궈낸 몸을 갖고 싶다. 선 채로 허리를 굽혀 손끝이 발끝을 지나 바닥을 짚고도 아프다고 징징거리지 않을 가뿐한 몸. 쓰지 않은 근육들이 굳어버린 젖산에 갖혀 망치로 땅땅 때리면 껍질이 깨질 것 같은 몸을 벗어나고 싶다. 누구보다 일주일이 바쁜 어떤 작가님은 운동을 세 가지나 하신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몸을 아껴주는 법을 알고 계신다. 유명하지 않은 내 친구들도 어느샌가 운동을 하고 있다. 삶의 질에 건강은 필수적이니까 당연한 건데, 나는 어쩌자고 이러고 있담. 정말 내 몸에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인기 절정의 ‘오늘부터 운동뚱’ 을 보면 반드시 운동 후에 먹고 싶은 음식을 푸짐하게 먹는다. 운동은 건강하게 즐겁게 살기 위한 노력이란 걸 설명하는데 그 이상이 필요할까. 나도 비웃음 사는 스트레칭 말고 좀 더 적극적인 땀이 필요하다.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여름이 가기 전에 진한 땀을 흘려 볼이 상기되고 체온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시작해 보면 좋을 텐데. 말에 확신이 없는 건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어쩌지. 올여름 제대로 땀을 흘려볼 수 있을까? 확실한 여름의 뜨거운 맛, 볼 수 있을까? 


<이미지출처: you-tube 오늘부터 운동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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