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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31. 2022

별자리로 당신을 부른다면

교과목에서 제대로 배우기 전, 별자리의 세계는 낭만과 환상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선명하게 처녀자리나 큰 곰자리가 점점이 형태를 이루고 있는 모양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알게 된 별자리에는 시시한 몇 개의 점들이었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큰 곰도, 처녀도, 물병도, 사자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뒤통수를 친 경우라고 해야겠지. 그럴 바에는 처녀자리를 크로와상 자리라고 부르고 큰 곰자리를 운동화 자리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았다. 만약 발견한 사람의 취향에 따라 이름을 붙인 거라면 어느 덕후가 발견한 별자리를 BTS자리, 강동원 자리로 부를 수도 있고, 옥수수 자리, 까눌레 자리, 간장 떡볶이로 부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직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별에게 원하는 이름을 붙이게 해주는 사이트가 있는 모양이다. 천체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별이라면 내 이름 붙은 별을 선물 받는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다. (안 받아봤으니까 당연히 모르지.) 별이 사람들에게 의미를 갖는 건 실제 그 별이 얼마나 밝은 빛을 내는가 보다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가 때문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은 시리우스인데, 시리우스보다 밝은 별이 많지만 시리우스가 가장 가깝기 때문에 가장 밝게 보이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지구에서 8.6광년 떨어져 있다.)


까맣게 보이는 우주에서 지구에 닿는 빛의 종류에 따라 만들어지는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나는 직사광보다 천공광이 좋다. 직사광은 뭐랄까, 공격적이고 배려가 없달까. 적나라한 빛은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뭐든 그렇다. 은유와 메타포가 더 아름답다. 그래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나 ‘낮은 소리로 말하던 시간’ 같은 책이 좋다.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 흐린 날이 좋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직사광이 없어 차분한 안정감이 든다. 맑은 날에도 매직 아워부터 시작되는 아늑한 분위기가 좋다. 카페에서도 해가 훤히 드는 창가보다 조도가 조금 낮은 구석 자리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 가게 식물들도 직사광을 싫어한다. 직사광이 드는 창가에 둘 수 있을 줄 알고 열대 식물들 위주로 샀는데 신기하게도 창가에만 두면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타버린다. 잎이 생기 없이 쳐지는 이유를 모르고 영양제나 물을 주는 횟수를 늘려봤는데, 원인은 직사광이었다. 열대식물이지만 직사광을 피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열대식물조차 직사광을 피해야 한다면 대체 어떤 식물이 직사광을 좋아할까. 어쨌든 식물들도 나처럼 직사광보다 천공광이 좋은가보다. 적나라한 건 식물에게도 해롭다. (그래도 누군가는 직사광을 좋아할 테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지.)


말을 포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적나라한 말은 해로울 수 있으니까 말을 골라야 한다. 그러니 말의 직사광보단 말의 천공광을 만들기 위해서 표현을 고르는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배려를 장착하고 싶은데, 사고가 느려져서 적절한 단어 로딩 속도도 느린 데다 단어를 고르기까지 하려니 어쩔 수 없이 어버버 거리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어버버는 배려의 결과물이라고 스스로... 그 뭐라고 하더라 그런 걸... 스스로. 암튼 그거. (그것에 해당하는 단어가 한참 만에 출력되었다. ‘합리화’)


우리가 보는 빛은 존재가 품은 색이 아니라 존재가 반사시킨 빛의 색 중 우리 눈이 포착한 것이다. 그러니까 가시광선 중에 사물이 반사시킨 빛이 그 사물 본연의 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도 어쩌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반사한 것들, 그중 내가 알아챈 것들의 집합체가 아닐지. 그 사람의 표정, 말, 몸짓, 그것들이 모여 만든 별자리 같은 행동. 그럼 이제 친구들에게 별자리와 같은 이름을 하나씩 붙여보자.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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