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순간들은 갑작스레 받게 되는 이별 통보와 많이도 닮아있다. 떠나가는 상대방의 마음을 달려가 잡아야 하나, 아니면 내 마음도 뒤돌아서서 돌아가야 하나, 그렇게 망설이다가 결국 내가 뭘 잘못한걸까라는 자아성찰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그런 순간들. 그리고 며칠 후 돌이켜보면 너무도 분하고 부끄러워서 이불을 빵빵차면서 씩씩대지만, 보다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나면 그 분함, 부끄러움들이 사실은 그래도 순수함과 열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났었다.
심장 근처를 쿵 때리는 단편 소설을 한 호흡에 읽고나면 저런 감상에 빠지곤 한다. 단숨에 읽고도 아직 조금의 숨이 남아 있는 정도의 분량. 작가는 이미 페이지를 접었는데, 아직도 난 못 빠져나와 허우적대고 있는 미련함. 한참동안 예전의 그리고 지금의 부끄러운 나와 마주했다가, 민망함에 피식 웃고 나면 그제서야 다음 소설로 넘어갈 수 있었다.
# 자격지심, 질투, 강박...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못나고 못생긴 감정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나도 참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많은 날들을 지나 보내왔다. 남들이 나에게 지어보이던 미소에 방금 새로 뜯는 면도날처럼 파르라게 반응했던 것, 마음 조금 깊숙한 곳에 들어오고자 했던 따뜻함을 얼음장같은 차디참으로 밀어내었던 것이 내 자격지심, 강박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읽으려고 몇 권의 책을 샀다. 그 중 최은영의 등단작 "쇼코의 미소"를 포함, 7편의 단편 소설을 담아놓은 동명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읽고 있다. 단편 7개 중 3개만 읽고도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미안한 내가 비쳐져서 그리고 그렇게 더 발가벗겨지는게 무서워 122페이지에서 멈추어버렸다.
# 박완서의 '일상에 대한 지독한 디테일함', 은희경의 '여우같이 얄미운 구성', 김연수의 '가닿기 어려운 순진한 아름다움"을 많이도 가진 84년생 작가를 보면서, 살포시 질투의 감정이 피어나는걸 보면 아직도 부끄러움을 느낄 나날이 많이 남았구나라는 생각에 또 피식 웃음이 난다. 이렇게 한 해가 이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