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스킨 노트

"커피앤노트"의 삶

by Wondoo Lee

몇 년 만에 몰스킨 노트를 샀다.



오래전 처음 취업을 하고 나서 좋았던 것들 중 하나는 카페에서 돈 걱정 없이 커피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몰스킨 노트를 부담 없이 사도 될 정도의 돈을 번다는 것.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레벨 업되는 기념으로 세상이 나에게 주는 작은 자유 같은 것이었다.


20대 후반, 나는 꼭 성공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아이디어와 다짐들을 노트에 적어두곤 했었다.

한때 유행했던 자기 계발서의 대부분의 영업 비밀은 "생생하게 그리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1도 없이 살아왔던 20대의 나는, 그 어린 시간들이 거의 다 지나가고 나서야 미래가 무서웠고 지금의 내가 불안했으며,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면 그대로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턴가 몰스킨 노트에 생각나는 아이디어도 기록하고, 작은 미래에 대한 다짐도 몰래 적어두었으며 그때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미래의 내 삶에 가지고 싶은 것들도 그려두었다.


그렇게 한동한 미친 듯 뭔가를 적다 보니, 노트가 남아나질 않았다. 성공하겠다는 초반의 기세 덕에 몰스킨 노트 가격 3만원이 작은 글씨로 보였지만, '커피를 하루 3잔만 마시자, 마음을 편안히 하자' 같은 작은 다짐들과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들을 막 기록하다 보니 금세 꽉 차버렸다. 다시 노트를 사러 가서 보니, 그제야 가격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와 비슷한 노트들을 샀는데 뭔가 기세도 죽고 흥이 덜 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다시 몰스킨 노트를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난 회사에 들어갔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자유롭게 성공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꿈꾸던 성공을 하기 위해 하루에 커피를 8잔씩 마시면서 하루에 책을 1권씩 읽었고, 돈 버는 생각을 하루에 몇 시간씩 하면서 미친 듯 정보를 찾고 또 생각하고 기록하고 다짐하고 그렇게 시간을 채워나갔다.


어느 순간에는 돈도 성공도 없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그 순간들을 기록해두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돈이 좀 생겼지만 전보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조금은 차오른 통장잔고에 웃음 짓는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들을 엮다 보니 마흔살에 벌고 싶었던 돈을 서른일곱살에 벌었고, 어느 순간 나도 성공했구나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학교 앞 밥집에서 1인 1메뉴 이외에 계란찜을 고민없이 추가할 수 있었고, 2+1하는 하겐다즈 파인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금수복국에 가서 복국 먹으면서 복튀김도 시킬 수 있었고, 펄쉘에 가서 굴과 와인을 마시고 또 와인 한 병을 추가하고, 어떤 모임이든 누가 비용을 내는지 크게 고민 안하고 만나는 그런 순간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해지는 삶에 커피만 남았고 더 이상 노트는 없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삶을 작은 순간들을 글로 남기고, 새로 나온 작가의 책에 감탄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음악을 듣고 작은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듣고, 노트북으로 오래된 영화를 보고 또 그런 삶을 글로 남겨두는 는 것들.


어느 순간 그런 삶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좋은 차를 타고 골프를 치러가는 것 대신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을 걸으면서 발길이 닿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깨달음과 뭉클함을 간직하고 그런 일상의 행복함을 글로 남겨두는 삶.


커피는 하루 8잔씩 마시고 있으니, 노트만 추가하면 되지 않을까?

우선 그때로 돌아가기 위해 몇 년 만에 몰스킨 노트를 샀다. 다시 일상기록자로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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