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4일 일요일 날씨 맑음
제목: 텔레비전
어제 잠을 깨고 보니 갑자기 텔레비전 생각이 나기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나 재밌는게 없었다.
아침이라 그러나 보다.
나는 만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내가 무슨 프로그램을 볼 때면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
나는 자주 '크면 뭐가 될까?' 생각을 한다.
그러면 차라리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가 될까?
일기장 곳곳에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다는 문장이 많다. 어떤 날은 코미디 프로그램'한바탕 웃음으로'를 보다 코미디언이 하고 싶다, 만화 영화 '영심이'를 보고 영심이가 되고 싶다, 그림이 좋아 화가가 되고 싶다, 이번에는 가수까지 노려본다. 진심이 아니라 그저 일기장 칸을 채우기 위한, 일기 쓰기 패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를 비춰볼 때 진심일 확률이 좀 더 있다. 현재의 나도 무척이나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희망직업으로 작가, 화가, 시인, 상담사를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는 작가, 고등학교 때는 카피라이터가 꿈이었다. 그래서 결국 대학 전공이 광고홍보학이었다. 확고한 꿈이었다라기보다 가장 흥미가 있는 직업이었다. 그 밖에 한번쯤 관심이 가고 해보고 싶었던 직업은 수없이 많다. 연기자, 성우, 라디오 작가, 작사가, 무대 디자이너, 사업가, 동기부여 강사, 디자이너, 약사, 정신과 의사, 정치인, 책방 주인, 커피숍 주인, 교수, 심리 상담가, 유튜버, 소설가, 카카오 대리기사, 여행작가, 스타일리스트, 사서, 영화 마케터, 예술 큐레이터, 미술품 경매사, 동화 작가, 농부, 약초꾼.
정말 스팩트럼이 넓은 꿈들이다. 이 중 아직까지도 품고 있는 꿈도 있고, 한 때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꿈도 있다. 지금 나의 공식 직업은 전업주부이고, 책 한 권 쓴 저자다. 한 번도 꿈꿔 본 적 없는 영어 강사를 몇 년 해본 게 다다. 나 스스로도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은 몽상가라 생각한다. 어떤 직업을 떠나 소소하게 하고픈 것도 매일 새로 생겨나는 편이다.
예전 남친이 끊임없이 000 하고 싶다.. 나중에 난 000 할 거야!라고 말하는 내가 감당이 안된다며 헤어지고 했다. 자신은 그걸 다 이루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못 될 것 같다고. 처음에는 그가 이해 안 됐지만, 도와달라 밀어달라 요구한 게 아니어도 옆에 있는 사람이 자꾸 그런 말을 하면 심적 압박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 난 그냥 매일 그런 말을 달고 사는 인간이다. 진짜 이루고 말겠어. 해내고 말겠어라는 의지보다도 그냥 하고 싶다.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의 표현이다. 말이라도 속시원이 해보는 스타일이다.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냥 말이라도 한번 내질러 보는 거다.
나는 자주 '크면 뭐가 될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자주 크면 뭐가 될까 생각한다.
50살 먹은 나의 모습을, 60의 나의 모습을.... 할머니가 된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꿈꾼다. 28년 전의 모습이 아직도 내 안에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내가 이런 인간이라 나는 내가 참 좋다. 다양한 가면을 쓰고 많은 무대에 오를 것이다. 쓸모없는 것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있고. 허황된 것만이 가지는 기쁨이 있다. 나는 계속 꿈꿀 것이다. 쓸모없고 허황된 꿈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