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금요일 00국민학교 4학년 4반 1번
제목: 엄마의 화
저녁부터 엄마가 웬일인지 "아휴, 신경질 나네"하고 자꾸 말씀하셨다.
나는 도저히 알아내지 못하였다. 엄마가 왜 그러실까?
하지만 내 생각엔 무슨 욕심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레드 너는 뭣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니?
아휴 진짜 내 머리까지 돌아가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의 화도 여러 가지라고.
'아휴 속 터져' '아휴 가슴 찢어진다' (히히 엄마 미안해요....)
하루빨리 내가 탐정이 되어 엄마의 수수께끼를 풀고 말 거야.
엄마는 23살에 나를 낳고 서른쯤에 애 셋 엄마가 되었다. 네가 아들이었으면 너만 낳고 애를 셋이나 낳지 않았을 거야,라고 늘 얘기했었다. 언제나 빨리빨리와 얼렁 못하나를 입에 달고 살던 엄마는 참 바지런히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다. 가게까지 하면서도 늘 남대문에서 가장 이쁜 옷을 사다 입히고, 요리도 빠르고 잘해 간식도 자주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동그란 도넛, 팥칼국수, 부침개, 맛탕, 식혜를 먹을 때면 아무리 엄마가 미워도 그때만큼은 엄마가 좋았다. 난 엄마가 나를 가장 미워하고 심지어 계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학교 전교생 중 두 번째로 작았던 나를 엄마는 참 많이도 때렸다. 동생들 밥 잘 안 챙겨줬다고, 방 청소 안 해놨다고, 공부 안 한다고, 어항을 깨뜨렸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혼을 냈다.
중학교 때부터 체벌은 없어졌지만 초등학교 때 기억들은 상당히 오래 남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우연히 엄마와 맥주를 마신 날, 엄마는 그때 내가 널 참 많이 혼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 너한테 화풀이를 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고 울었던 것 같다.
32살에 첫 아이를 출산했던 날, 엄마는 일을 하느라 내 옆에 있지 못했다. 수많은 날들이 그러했다. 혼자 알아서, 거기다 동생 둘을 챙겨야 했던 날들이 외롭고 힘겨웠다. 그때 사진들을 보면 거의 웃지 않는 무표정이다. 환하게 웃는 사진은 어쩐지 모르게 가면을 쓴 듯 어색해 보인다.
둘째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는 축하해주지 않았다. 왜 힘들게 애를 또 가졌어? 첫째가 아들이니 넌 더 안 낳아도 되는데... 너 힘들게.. 엄마는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아픈 날들의 기억이기에 이렇게 된 걸까.(하지만 걱정 마시라. 엄마는 둘째를 편애하지 않으려 노력하 실정 도로 좋아해 주신다) 아들 둘을 키우며 말할 수 없는, 미룰 수 없는, 욕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씨베리아 등반'과 같은 날들을 겪으며, 엄마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알 수 없는 날 선 신경들을 어떻게 누그러뜨려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엄마가 우리에게 신경질 부렸던 표정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대형마트에서 한 엄마가 장난치고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던 아이를 혼내고 때리는 엄마가 있었단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손가락질하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지나가는데, 한 할머니가 조용히 그 엄마에게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안아줬단다. 왜 아무 죄 없는 애를 때리냐고, 정신 차리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안아준 할머니와 같은 존재가 엄마에게도 내게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엄마의 화' 원인이 궁금했던 어린 나,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때의 엄마보다 '언니'가 되었다. 엄마의 알 수 없는 신경질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탐정이 되지 않아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