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17년) 2월 10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가면서 내 안에 생긴 꿈이 있었다. 바로 작은 책방을 하는 거다. 올 4월, 큰 아이 유치원 바로 옆 골목에 작은 부동산 했던 자리가 나와 계약 직전까지 얘기가 오갔다. 하지만 좋은 자리답게 적잖은 월세가 무서웠고 남편은 미덥지 않은 눈치였다. 10년 직장 생활했지만 내게 남은 돈은 그저 주부에게 두둑한 용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공실인 상가는 많으니 내 조급함으로 밀어붙이지 말자 싶어 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때 작은 책방을 좀 다녔다. 책방 주인장님들과 얘기할 때마다 들었던 얘기가 ‘손이 많이 가는데 인건비도 안 나온다, 책 읽을 시간은 더 없어진다’였다. 솔직히 알고 있는 사실을 자발적으로 겪으려 하니 겁이 났다.
몇 주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아는 동생 집에 놀러 갔다 예쁜 창가가 있는 1층 상가를 봤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좋지 않은 자리 탓인지 저렴한 보증금에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월세가 나를 멈추게 했다. 다시 가슴이 뛰었다. 한참을 서서 가구 배치며 그 안에 있는 나를 그려봤다. 상가 사진을 찍어와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보여줬다. 남편은 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돈이 없다 했고, 엄마는 돈 안 되는 짓만 하려는 너를 못 믿겠다며 여윳돈을 못 빌려 주겠다 했다. 책방 하려고 다시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학원으로 돌아가 일해야 할까? 난 정말이지 왜 이리 돈 안 되는 짓만 하고 싶어 할까? 책방 차리는 게 요즘 유행이니 그런 걸까? 진짜 하고 싶은 걸까?
나의 일기장 친구‘레드’가 계속 신호를 보냈나 보다. 결혼하고 8년 동안 서랍장에 있던 일기장을 꺼내보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4일 전 이 글을 봤을 때 작은 전율이 느껴졌다.
1992년 2월 2일 일요일 4학년
제목: 책
책책책
나는 책방을
차리려나보다
책책책
책 속에
나뭇잎을 넣어
책책책
책을 예쁘게
간직해야지
11살 나도 책방이 하고 싶었나 보다. 친한 친구와 톡을 하며 얘기해주니 “소~~ 오름~ 다 갈 길이 있나 보다.”라고 답이 왔다. 그 친구는 나와 오랫동안 같은 영어학원에서 얘들을 가르쳤다. 이번 주에 그녀는 작은 학원을 개원해 원장이 된다. 사실 그녀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나보다 5년 늦게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예전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에 너는 나중에 커서 영어 선생님 하라는 글이 두 개나 있는 걸 보고 신기했다 한다. 그땐 영어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친구는 어린아이들이 확실히 보는 눈이 있다며 11살의 예지력을 믿으라 했다.
이 글을 쓰고 2년 뒤 나는 책방 대신 책을 한 권 썼다.
전국 몇몇 작은 책방에 내 책이 입고된 사진을 보며
11살의 예지력이 제대로 맞아떨어질 날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