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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타령] 어느 칼럼을 읽고

정말이야?

by 기나



얼마 전에 신문 칼럼 한편을 읽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대충 예상되는 제목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읽었다. 구구절절 지당한 말들의 향연이었다. 도서관계 종사자로서 재미있게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 그러나 끝내 나는 이렇게 질문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진실인가?


칼럼에 의하면 도서관은 ’그 특성상‘ 시민적 예절과 배려의 미덕을 저절로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프로 동의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 도서관들은 그런 공간인가? 도서관의 ‘그 특성’은 뭘까?


일단 공공의 장소다. 공공을 위한 집기와 물품, 가구와 장서를 갖추고 있다. 당신을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당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을 긋고 읽어서도 안되지만, 밑줄 그어 놓은 책을 그대로 반납할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만을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실수는 아름답다. 책을 읽으면서 마시던 커피를 쏟아 책이 오염되는 일, 같이 사는 반려견이나 어린 아이가 가지고 놀아버려 책이 훼손되는 일, 그것을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 규정상 변상처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눈 딱 감아주고 싶은 일이다. 앗, ’내 책’인 줄알고 ’실수로’ 밑줄을 그었다고? 다 읽고나서 내 책이 아닌 걸 알고 깜짝 놀랐는데 ‘실수로‘ 밑줄 지우는 걸 잊고 반납했다고?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은 아직 본적 없지만 상상가능한 일이고, 현실은 종종 상상 이상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공공은 당신에게 더 좋은 시민, 더 좋은 이웃이 되는 기회를 주는 곳일지도 모른다. 결코 어렵지 않은 그 기회는 또 꽤 자주 온다. 매번 그 기회를 놓치면서 살아서 자신은 물론,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좋은 일이 무엇일까?


도서관은 또다른 공공의 장소다. 나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아닌 불특정 타인들이 모여 있다. 나만 편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내 편의가 타인의 편의를 침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눈치는 봐야 한다. 공공의 장소에서 편안하게 책도 보고 휴식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지만 맨발을 올려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괜찮지만 관내를 돌아다니면서 양치질을 해도 좋다는 뜻도 아니다. 아주 드물게 그런 일이 발생하는데 그러는 사람은 또 항상 그러는 편이다. 도서관에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다. 온갖 안내문이 붙여있다. 또 하나 추가해야 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 말았다. 민원이 발생할 법도 한데 아무도 아무말 없는 걸 보면 내 자신의 공공감수성이 평균 이상으로 민감하다고 묻어버리고 만다.


도서관은 역시 공공의 장소다. 공부할 때, 공공도서관이 문턱이 없다는 말을 가장 좋아했다. 도서관은 사실 딱히 뭘하러 오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온 김에, 지나가는 김에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고, 도서관 소식을 포함한 주변 소식도 듣고 가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공공도서관이 공부방으로 중심 기능을 해 온지 오래되어 ’도서관은 그런 곳이 아니야‘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도서관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런 곳이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굴 불편하게 하려고도 아니고, 카페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드나들도록 음악을 트는 도서관이 늘고 있다. 어느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홀에 음악을 틀어 놓은 첫날, 10분만에 공부하러 도서관에 온 한 시민의 민원으로 음악을 껐다. 내 동료는 특정 책을 찾는 시민에게 안내하고 필요한 추가 설명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조용하라고 했다. 무소음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목적으로 도서관에 온 사람들에게 숨막힐 수 있다. 내 집구석도 아닌데,어느 한 쪽만 아니라 같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칼럼은, 도서관에는 ‘자유와 여유와 공유가 있다’고 마무리한다. 죄송하지만 그건 분명 잘못된 말이다. 어느 도서관에 그것들이 있다 한들 보편적이지 않다. ’있어야 한다‘내지는 ‘있었으면 좋겠다‘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런 주장과 염원들이 모여 언젠가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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