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 탈출

관광학개론

by 기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지만 나는 관광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목표 없이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을 보고 열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건 분명히 알고 있어서,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는 나를 두고 난생처음 부모님의 관여, 간섭, 참견, 걱정을 듣게 되었다. 문창과라니, 좋아하는 게 문학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전공인데 나는 문학을 각별히 좋아한 건 아니고 여행에 대한 꿈이 있었다. 전국은 물론 세계를 누비며 가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문창과 가면 어쨌든 글쓰기를 배울 테니 꿈의 밑천을 쌓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


원하는 게 '여행'과 '글'이라면 '글' 말고 '여행'을 선택해도 되지 않겠냐며 큰언니가 관광학을 제안했다. 생각도 해보지 않았지만 그때도 나는 답을 정하지 않고 살지 않았던가. 그래? 그렇겠네. 하는 마음으로 당시 언니가 살던 대전의 이웃 도시, 공주로 대학을 정했다. 언니 곁인 데다가 국립대라 부모님이 '문창과'에 관여, 간섭, 참견, 걱정하는 것만큼 관심 가져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관광학도가 되었는데 개론시간에 관광, 여행, 레저의 정의를 다룰 때 핵심이 '일상이 아닌 것'이었던 기억이 난다. (네, 이 말하려고 수능이야기부터...)


그렇다면 내가 지난주 목요일 가서 일요일 돌아온,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던 그것은 무엇인가. 레저와 여가 사이 어디쯤 될 것이다. 장비를 펼치고 접는 과정에서 평소와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점에서 레저, 그걸 제외한 과정은 여가. 내가 일을 쉬고 있기에 가능한 3박 4일의 캠핑을 누리고 왔다. 레저를 특별히 즐기지 않고, 여가라면 집에서도 적당히 누리는데 굳이 캠핑을 가는 건 다름 아닌 '일상 탈출'이기 때문이 아닐까. 집도 내 취향에 맞게 요리조리 손 봐둬서 집에서 느끼는 안락함과 평화를 사랑하지만 그것 대신 단순하고 느슨한 기분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세끼 차려 먹지도 않았고 먹는 건 가급적 원플레이트로 해결했다. 각자 캠핑이라는 레저를 즐기는 이유가 다를 텐데 나는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목표다. 아닌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일까? 3박 4일 동안 드라마 보면서 프랑스자수를 놓았고, 책을 읽었고, 읽다가 잠들었고, 낮술을 먹으며 책을 읽었고, 책을 읽다가 텐트를 넘나드는 빛을 감상했다. 아이들은 자유시간. 가져간 태블릿을 거의 한시도 놓지 않았다. 서로의 만족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지 않았달까. 같이 놀아줄 것도 아니면서 나가서 놀라고 닦달을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았다. 캠핑에 무슨 답이 있어? 각자가 사랑하는 여가를 즐겼으면 됐다.


그러다 돌아왔다. 캠핑의 끝에 에미는 항상 짜증을 낸다는 수형이의 말에, 눈발을 맞으며 텐트를 철수하면서도 웃었다. 지동이는 배고파서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고 징징댔지만 달랬다. 집에 도착해 정리할 짐이 어마어마했지만 차분히 차근차근, 꼼꼼한 남편 성격에 맞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치웠다. 아이들도 나만큼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남 펴나도 나만큼 내 성격에 맞추려고 신경 썼을 거라는 생각이 지금 든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좋았네 이번 캠핑. 굿.

keyword
작가의 이전글'힘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