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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연습을 위한 연습

관점분류

by 기나

몇 년 전에 어느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어떤 이용자가 책 분류가 잘못되었다며 데스크로 가져온 기억이 난다. 제목이 곤충인가 동물명이었는데 분류는 철학에 되어 있었던 것.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고 받아뒀다.


도서관에 들어오는 책은 기본적으로 서가분류에 의해 서가상의 특정 자리를 배정(?) 해주는 방식이다. 분류법에 따라 책의 형식, 내용, 제목, 저자명 등을 기준으로 고유한 번호를 얻게 되는데 그게 청구기호다. 그 책은 아마도 제목은 곤충인가 동물명이었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그 곤충인가 동물의 특성에 빗댄 철학서였는지, 검토 후 그냥 그 자리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척 보면 척 분류되는 책들도 있지만 어디다 두면 더 좋을까 고민하게 되는 책들도 많다. 그런 책들 붙잡고 꼼꼼히 훑고, 검색하고, 조사하는 (비교적) 지난한 과정을 성실하게 겪는 사서가 많지 않은 게 공공도서관 자료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비극이랄까. 그러고 있을 시간을 주지도 않고, 담당자는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며, 그냥 후루룩 분류해 놔도 별일 없다는 점이 사서들을 그렇게 일하게 만든다. 아, 그런 환경이면 그래도 되느냐? 안되지. 나라는 사서는 그 과정이 길면 길수록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는 사람으로, 그랬을 때 비로소 아, 내가 일을 했다는 충만함에 기뻐하는 편이다. 그렇게 일하기 쉽지 않아서 업무를 바꿨다.


어쨌거나 제목이 곤충인가 동물명이었던 그 책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정답이지만 그 책에 정답이 하나라고는 또 하지 못한다. 어쩌면 580 언저리에 분류해 두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갈등이 될 때 분류기호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물리적으로는 한자리에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여기 있어도 좋고, 저기 있어도 좋을 책이라는 뜻.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보지 않겠지만 그런 걸 서지분류라고 했던 것 같다. (맞나 모르겠네)


그런데 말이다. 어떤 책들은 형식상 자리범주가 명확한데 내용과 주제를 보니 주제분류를 해서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 분야의 서가를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하게 되기도 해서 객관적으로 보면 영 생뚱맞은 자리에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그게 비평적 분류인가 보다. 내가 관점분류라고 부르는. 분류자의 의견과 관점이 반영된 분류인데 그런 분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그거다. 어린이책 <로봇의 별>은 누가 분류해도 813.7이거나 813.8이다.. 7은 시대구분이고,. 8은 동화라는 의미인데 통상 그 밖을 벗어날 수가 없다. 세분류로 SF주제에 해당하는 번호를 줄수도 있지만 이 책에 나라는 사서의 관점이 부여되면 로봇과학에 분류될 수도, 가족에 분류될 수도, 계급문제에 분류될 수도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없지만 사서들은 북큐레이션의 형식으로 비평적 분류를 시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북큐레이션을 부지런히 하지 무슨 관점분류를 하겠다고 이러나, 자문도 해봤다. 북큐레이션은 특정 주제 아래 다양한 도서 목록을 뽑는 작업이고, 어느 정도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사실 북큐레이션을 위한 북큐레이션을 하는 기분이 들고,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인 게 문제다.


책을 정성껏 읽어서 그 책이 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키워드를 만드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관점분류랄까. 그걸 여기서 하고 싶어서 일단 글쓰기를 시작해 보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쓰다 보면 써지는 정도까지 간 것 같아서 이제부터는 관점분류 연습을 위한 연습을 해보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요일별로 대주제를 두고 그 주제에 관한 에피소드나 단상들을 써왔는데 앞으로는 주 1회는 반드시 관점분류 연습을 위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으므로 이번에도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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