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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가 어렵다

-견진성사를 받는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비추어

by 기나

어제 견진교리로 특강을 듣고 왔다. 세 번째 특강이었는데 교재 펼쳐놓고 지루하게 진행되는 공부가 아니라 정말 좋다. 워크북이 있는데 특강 제목과 특강자에 대한 간략한 정보만 있고 빈 페이지다. 듣는 사람이 채우라는 것. 나는 채우지 않는다. 대체로 '그렇구나'하고 듣고 말고, 기억할 수 있다면 기억해두고 싶은 표현(대개 하느님 말씀)을 적어두는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어제는 달랐다.


제주에 뿌리내린 한국교회(가톨릭)에 대한 특강이었는데 정난주마리아부터 존..... 많은 신자들이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나는 처음 듣는 듯했던 이름이었다. 진리 안의 사랑을 실천한 외국인 신부님, 그분까지 주욱 흐름을 짚어주시며 제주의 천주교회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세례성사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면, 견진을 통해서는 '실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세례를 형식적으로 받았듯이, 견진 또한 형식적 절차 정도로 인식했던 내 태도가 전면 수정되었다.


실천의 방법이랄까? 정난주 마리아의 '인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준비' , 김기량 펠릭스의 '신의' 에밀타케 신부님의 무엇, 존 신부님의 또 무엇.. 왜 메모를 하지 않았을까. 기억해서 뭣하랴 하는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 텐데 여기서 쓰일 줄 몰랐다. 글을 쓰려니 메모하는 습관이 없는 게 아쉽다. 책에 밑줄 긋는 일에도 의도적으로 인색한 편인데, 그래서일까. 아니면 밑줄 긋기만 하고 다시 정리하거나 쳐다보지 않아서일까. 읽기가 잘 남지 않는다. 남아 있는 독서를 하려고 독서모임을 하고,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서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식인데 아, 암만 생각해도 게으른 성격 탓인 것 같다. 그 성격이 다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성격을 거슬러 정직하게 밑줄 긋고, 하나도 그냥 넘기지 말고 밑줄에 대한 단상을 적어가는 식으로 훈련을 해봐야겠다.


문제는 내가 읽고 있는 게 뭔지 감이 전혀 오지 않을 때다. 정말 모르겠지만 맥락 없이 밑줄을 그으며 숱하게 갸웃거린다. 이래도 되나? 이것도 읽는 것일까? 그래도 그냥 읽는다. 지금 읽고 있는 사르트르의 <구토>가 그렇다. 할 수만 있다면 한여름 독서의 계절로 미루고 싶을 만큼 나는 지금 그 책과 만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어떠한 이유로 읽어야 해서 읽는 중이다. 아주 단편적으로 조각조각 받아들이며 읽는다. 일단 끝까지 가보면 흐름이 보이기도 하니까, 지금 내가 믿을 건 그런 행운(?)뿐이므로.


어제 견진특강을 들으면서 책 읽기를 생각했다. 하느님만 생각해도 부족한 시간에 직업적 관심사를 떠올리다니. 나라는 신자의 신심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 텐데,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인내나, 신의 같은 것들을 책 읽기의 어려움을 수용하고 극복하는데 써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도무지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책 읽기에 믿음을 갖고 끝까지 참아보기, 책과의 신뢰와 의리를 저버리지 않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책 읽기 어려움을 넘어서서 자유롭게 확장이 될 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기...?


하느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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