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주간 긴장감이 높은 상태였다. 출근길 버스에서도 쉬이 잠이 안 오고 심장이 쿵쾅쿵쾅.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픔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퇴근하고 짜파게티를 거하게 먹고 밤 9시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재택근무하는 날이라 아침 산책을 하러 나왔다. 그동안은 늘 다짐만 하고 실천하기 어려웠는데 일찍 자니 일찍 눈이 떠지는구나.
버스 타고 집 앞 산에 갈까 하던 차에 카페가 보였다. 원두향을 풍기며 나를 유혹한다. 넘어가 줘야지. 15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샀다. 카페 앞 야외 테라스에 앉아 빈 속에 차가운 커피를 마신다. 아침 7시 30분인데 벌써 기온은 29도다. 매미는 맴맴 운다. 행복하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걷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광역버스를 타는 정류장 근처로 갔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버스를 타러 뛰어오는 여자가 보인다. 어제까지의 내 모습이다. 오늘도 광역버스를 타고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경기도민들을 (나 혼자) 배웅했다.
뻥 뚫린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새소리도 들리고 바쁘게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집 앞 마트에선 배추 수백 포기가 납품 중이고 치킨집에는 콜라 더미가 쌓이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과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주민들이 보인다. 이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강아지와 함께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풀냄새도 난다.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빠르게 달리는 차들을 본다. 조급했던 나를 보는 것 같다.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돌아보니 그렇게 치열하게 살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페이스대로 가자. 자,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다. 나의 홈오피스로 출근할 시간. 오늘 하루는 왠지 좋을 것만 같다.